멕시코에는 "피낀"(piquin)이라는 나무에 열리는 다년생 고추가 있다. 고추의 원산지인 멕시코에서 가장 매운 고추니 단연코 세계에서 제일 매운 고추이리라. 작은 고추가 맵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 바 요놈의 길이는 불과 1~2㎝ 정도, 그러나 혀에 닿자마자 불이 일어남을 느낀다.
 필자의 유학시절, 짓궂은 멕시코 친구들이 "고추먹기" 내기를 걸어 왔다. 흔쾌히 승낙하고 코리아 하고도 경상도 사내의 매운 먹성을 보여줄 때다 싶어 내심 쾌재를 부르며, 나는 28구경 권총 알보다 더 작은 피낀 한 알을 보란 듯 삼켰다.
 결과는? 난 혼수상태에 빠져버렸다. 맵디매움을 못 견딘 위가 총알 아닌 총알을 다시 목구멍으로 되돌려 보냈던 것. 이런 현상을 그들은 수비르(subir·올라오다)라 부르는데, 이 기이한 현상이 일어나면 게임은 끝이다. 아무리 물을 말로 들이켜도 몸 속 불은 꺼질 줄 모른다. 결국 위 도포제를 몇 봉 바르고 나서야 겨우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멕시코 친구들이 한국 김치, 그것도 경상도 김치 매운 맛에 눈 하나 깜짝 안하는 이유를 오장육부로 깨닫게 해준 사건이었다.
 우리의 정서를 대표하는 전통음식을 꼽으라면 열이면 아홉은 김치를 들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먹고 있는 빨간 김치의 역사가 불과 100년이 채 안될 수도 있다면? 김치의 주재료로 배추가 널리 쓰이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된 이야기가 아니다. 배추는 조선 후기 유중임의 〈증보산림경제〉에서 선을 보이기 시작해, 서유거의 〈임원십육지〉에 중요한 채소로 소개 되고 있지만, 지금처럼 즐겨 김치의 재료로 쓰이기 시작한 것은 불과 몇십년 전의 일이다. 멕시코가 원산지인 고추 역시 한반도에 들어온 지는 근 400년이 넘었지만, 김치의 재료로 쓰이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로 보여 진다.
 "음식사"를 공부하면서 갖게 된 궁금증을 알아보려 풍속화에 매달리게 됐다는 주영하(한국학중앙연구원 민속학 전공) 교수에 따르면, 김홍도 신윤복 김득신 등 조선 후기의 유명 화가와 작자 미상의 풍속화 23점 속에는 쌀, 떡, 엿, 술, 우유, 두부, 조기, 숭어, 불고기, 국수 등은 등장해도 김치는 안 보인다 한다.
 왜 우린 그 매운 것을 매 끼마다 먹게 되었을까. 혹 엉덩이의 푸른 몽고반점 때문은 아닐까. 우리와 중남미 인디오들이 공통으로 지니고 있는" 하여튼 멕시코에선 "고추먹기" 시합을 하지 마시라. 그들에겐 고추가 반찬이 아니라 거의 밥이다. 시인·울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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