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 100여 쪽에 달하는 멕시코 신문의 두께는 아마 세계 최고일 것이다. 그래도 웬만한 사건은 기사화 되지 못한다. 워낙 큰 범죄와 대형사고가 잦아, 작은 것들은 아예 기사거리가 되지 못하는 것이다.
 20여년 전 이야기다. 친구와 나는 중고차를 사려고 정보지를 들고, 멕시코시티 외곽도시 "네싸꼬요틀"을 찾았다. 가격이 좋은데다 무사고에 차 성능 또한 완벽하다고 써져 있었기에, 행여 팔려버릴세라 아침 일찍 출발했다.
 신문에 나와 있는 주소지 앞에서 기다린지 5분 쯤 지났을까. 흰색 레바론 한 대가 골목으로 마악 진입하고 있었다. 저 차구나 하고 우린 마음씨 좋은 멕시코 주인아저씨의 하차만 기대하고 있었건만 이게 웬 날벼락인가. 기관단총과 각종 무기로 무장한 괴한 4명이 내려와선 "폴리시아(경찰)"라고 외치며, 우릴 강제로 차에 태웠다.
 차는 인적이 드문 보다 더 한적한 곳으로 가는 듯 보였다. "당신네들이 경찰이라면 경찰서에 가자"고 말했더니, 두목으로 보이는 콧수염의 사내는 대답 대신 씨익 웃으며 가방에 든 것이 뭐냐고 물어왔다. 나는 돈이라고, 4천불이라고 사실대로 말했다. 어차피 우리 돈이 안 될 운명인데 쓸데없는 거짓말로 더 큰 위험을 자초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콧수염은 열 셀 때까지 가방을 건네라고 하면서, 38구경 리볼버를 나의 이마에다 가져 왔다. 장진된 총알들이 빼곡히 보였다. 순간 아찔했지만 4천불, 유학생에겐 너무나 큰 돈이었기에 나도 모르게 그 중 3분의 1만 가져가면 안 되겠냐고 타협 아닌 타협을 시도했다. 그러나 그는 혀끝으로 침을 콧수염에다 묻히더니, 중지로 수염을 가다듬고는 별놈 다 보겠다는 듯 픽 웃고선, 무시하고 아홉, 여덟, 일곱을 세어나갔다.
 다시 나는 거꾸로 내가 3분의 1을 가지고 그들이 3분의 2를 가지면 안 되겠냐고 해 보았다. 그 말에 콧수염은 인내심을 잃은 듯 보였다. 더 이상 시간을 끌기 싫다며 방아쇠를 당길 듯해 학교 갈 때 쓰는 가방 만은 돌려달라고 했다. 60초가 그렇게 긴 시간이던가. 빈 가방을 들고 우린 60을 세며 죽을 맛으로 그 긴 골목을 털래털래 빠져 나와야만 했다. 그 전에 뒤돌아보면 우리 골통을 날려 버리겠다 하지 않았던가.
 만약 우리가 그 때 총을 맞고 죽었더라면 멕시코 신문에 났을까. 만약 신문에 났다면 사람이 죽어서가 아니라 동양인, 그것도 당시 E.T 만큼이나 드물었던 한국인들의 죽음이 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리라. 시인·울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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