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유학 마지막 2년간 나는 시티에서 300㎞ 떨어진 서남쪽에 위치한 게레로 지방 인디오마을에서 생활했었다. 시티의 복잡함이 싫었던 까닭이다.

어느 봄 날, 인디오 친구들의 옥수수 파종을 도와주다 나는 영화에서나 봄직한 경험을 하게 된다. 나무호미를 들고 흙을 파려는 순간, 호미 자루에 숨어있던 전갈이 나의 손등을 문 것이다. '아'하고 아파할 겨를도 없이 코끝자락에 개미 기어가는 느낌이 일더니, 곧이어 머리가 띵해지기 시작했다.

"알라끄란"(전갈)이라 외치자, 저쪽 골에서 밭을 갈고 있던 인디오친구 쏘치(Xochi)가 달려오더니, 대뜸 붉어진 나의 손등을 빨기 시작했다. 100㎞ 반경에 병원은 커녕 약방조차 없었기에, 나의 목숨은 그들 손에 달려있었다. 교통편이래야 아침 저녁 두 번 다니는 트럭을 개조한 뻬세로(미니버스) 한 대가 고작이었다.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덜컥 겁이 났다. 그리운 얼굴들이 하나 둘 영화의 등장인물처럼 스크린 되었으며, 오버랩되는 인물들에게 난 알 수 없는 헛소리를 지껄였던 모양이다.

우리말로 된 나의 헛소리에 나의 순박하고 인정 많은 인디오 친구들이 적잖이 당황했을 것이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난 무사할 수 있었다. 그들의 민간요법은 간단했지만 대단했다. 풀뿌리 몇 개를 씹고, 이름 모를 차를 마신 게 전부였으니 말이다. 그 사건 이후 난 바퀴벌레만 봐도 깜짝 놀란다.

곤충에 대해 사람들은 대체로 상반된 인상을 갖는 듯하다. 하긴 '같은 물이라도 뱀이 먹으면 독이 되고 소가 먹으면 우유가 된다' 하지 않았는가. 거미, 파리, 빈대, 개미, 바퀴벌레 등은 살충제를 뿌리면서까지 박멸에 나서지만, 꿀과 과일, 아름다운 비단을 주는 벌, 누에 등은 오히려 돈을 들여서라도 키우지 않는가.

그러나 털이 많은 파리는 탈모증에, 빈대는 입술 부스럼 병에 큰 효과를 본다고 한다. 또한 아마존강 군대개미의 큰 턱은 '상처봉합기'로 이용되며, 굵기가 머리카락의 수천분의 1에 불과하지만, 탁월한 끈기와 신축성을 지니고 있는 거미줄은 측량장비, 현미경, 총의 망원조준기에 필요한 광학 물질의 중요한 재료로 쓰이고 있다한다.

이제 거의 나를 문 전갈 녀석만 인간에게 유익하면 될 것 같은데… 결국 얼마 전 앨라배마대학 해럴드 Harald Sontheimer 교수팀은 전갈의 독이 뇌종양 치료제로 활용될 수 있다고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이쯤 되면 벌레가 많은 나라가 강대국이 되지 않을까. 반 우스갯소리를 한 번 해본다.

시인·울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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