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와 꽃들은 위기를 느끼면 오히려 더 많은 꽃과 열매를 맺는다고 한다. 종의 보전을 위한 자연의 섭리가 그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우린 그 반대의 길을 가고 있는 듯하다. 35억년 생명의 역사에서 종의 번식을 의식적으로 기피하는 생물은 일찍이 없었다. 우린 분명 위기의 시대에 몸담고 있건만, 스스로 번식률을 낮추고 있는 것이다.

60세 이상 노인인구가 14세 이하의 아동인구를 추월하는 '인구의 대역전' 현상이 가속의 페달을 밟고 있다. 65세 이상의 고령인구가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7%(고령사회)에서 20%(초고령사회)에 도달하는데, 프랑스는 115년, 영국은 91년, 미국은 88년, 일본은 36년 걸렸는데 반해, 한국은 불과 26년만인 2026년에 초고령사회로 진입할 것으로 전망된다.

고령화의 물결은 우리 사회의 정치·경제 시스템 및 문화적 풍속도를 바꿔 놓고, 고용정책, 의료보험, 연금제도, 재정, 산업 등 경제·사회 전반에 걸쳐 지대한 영향을 끼칠 것이다. 사실 노화에 대한 두려움은 생물학적 공포 외에도 노동 생산성의 저하를 의미하기에, 그 두려움은 예상외로 클 수가 있다. 그러나 그같은 불가피성을 십분 이해하더라도, 고령화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편파적이고 악의적인 영화, 드라마, TV광고 등 대중매체들까지 선해하기는 힘이 든다.

최근 인간의 정신적 능력에 관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70세까지는 상황에 대한 순발력만 다소 느려질 뿐, 오히려 어휘력이나 응용력은 더 좋아진다고 한다. 인류 평균 수명이 채 50이 안될 때 80의 나이로 베르디는 오페라 '팔스타프'를 썼으며, 괴테는 24세에 쓰기 시작한 '파우스트'를 82세에 완성하였다. 편견만 버린다면 더 많은 베르디와 괴테도 나올 수 있지 않을까?

고령화에 대한 긍정적 인식 전환이 절실히 요청되는 시점이다. 진시황의 불로장생에 대한 염원이 아니더라도, 사람이라면 누구나 장수를 희망해온 것이 사실이고, 그 꿈의 실현, 즉 그 꿈의 집합적 산물이 바로 고령화 아닌가. 하지만 우리는 우리 꿈의 결과물을 재앙으로 여기는 듯하다. 노화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낙인은 자의식과 통제력상실, 창의력과 사고력 저하로 이어질 것이다.

오로지 해결책은 '노인들은 병들고 고립되어 있으며, 육체적 및 정신적으로 비생산적이다'라는 부정적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것 아닐까. 위기를 느끼면서도 더 이상 씨를 퍼뜨리기 싫어하는 우리, 고목이라도 잘 돌봐야 할 것인바. 시인·울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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