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은 문명과 밀접하다. 인간 생명은 수정되는 순간부터 물질적·사회적 환경에 둘러싸인다. 동시에 질병과의 관계도 시작된다. 인간의 질병은 문명을 만들기도 했으며, 파괴하기도 했다. 인간의 역사는 곧 질병과 벌인 전쟁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스인들이 로마 군대에 항복한 원인에는 말라리아도 있었다. 말라리아가 창궐한 그리스에 더이상 전투 의지는 사라지고 없었던 것이다. 14세기 유럽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페스트로 유럽 인구의 3분의 1은 사라져버렸다. 이 엄청난 불행은 유럽 경제 형태에 큰 변화를 가져 왔다. 페스트 이후 유럽 노동력은 크게 부족해지고, 노동자와 농민들의 힘이 상대적으로 커지면서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중세봉건경제가 와해되기 시작한 것이다.

근대에 들어와 인류는 발진티푸스를 옮기는 이와의 전쟁에 시달리게 된다. 나폴레옹의 군대를 포함해 그 때까지 유럽의 모든 전쟁과 전투에서 숨진 사람보다 발진티푸스에 의해 희생당한 사람의 수가 훨씬 더 많았다. 또한 1차 세계대전 때는 발진티푸스가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는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발진티푸스는 혁명전쟁기의 러시아를 휩쓸어 1918~1922년 사이에 근 3천만명이 발진티푸스에 걸렸으며, 그 중 10% 정도가 생명을 잃었다. 혁명의 승패가 발진티푸스에 달려 있는 듯했다. 1919년 레닌은 외쳤다. "사회주의가 이를 몰아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가 사회주의를 무너뜨릴 것이다".

그 후 80년이 지난 오늘, 불과 몇 십 년 전까지만 해도, 이 앞에서도 무력했었던 인간이, 질병과의 전쟁에서 초현대식 무기를 구축하기에 이른다. 재래식 무기시대에 혜성처럼 나타난 핵폭탄처럼. 그것도 미국, 독일, 러시아도 아닌, 자랑스러운 우리조국 대한민국에서….

1940년대 인류를 멸망시킬 수 있는 원자폭탄을 만들면서, 언제 미국이 그토록 윤리적으로, 종교적으로 고뇌했더란 말인가. 미국은 오로지 세계최강국이 되기 위한 길을 달려왔을 뿐이다. 이번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연구는 아인슈타인의 원자폭탄 이상이다.

아니 줄기세포연구는 오히려 생명 파괴를 위한 것이 아니라, 인류의 생명 보전을 위한 것이라는 차원에서, 원자폭탄과는 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그렇다고 생명윤리학적으로 전혀 문제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다른 이라면 몰라도, 전쟁광이라 불리는 부시가 인권 운운하면서, 줄기세포연구에 반대하는 건 썩 잘 어울려 보이진 않는다. 시인·울산대 교수

필자가 장기간 멕시코 출장을 가는 사정으로 그동안 연재했던 '구광렬의 문화 엿보기'는 69회로 끝을 맺습니다. 그동안 애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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