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굴암 들어가는 곳과 흡사하게 풍광 좋은,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걸어가면 참 좋은 자리에 들어섰구나 하는 생각이 누구나 들게 한다. 도산을 안고 돌아가는 낙동강 물이 서원 앞에 와서 호수를 이루는 탁영담을 보면 선생이 얼마나 사랑한 곳인가를 짐작하며 감탄사가 저절로 튀어 나온다. 아~ 정말 아름답구나. 흘러가는 맑은 물에 갓끈을 씻었다는 탁영담(濯纓潭) 건너, 정조 임금이 선생의 유업을 기리고 지방 선비들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 도산별과(陶山別科)란 과거를 보았던 시사단(試士壇)이 안동댐의 무지막지한 건설현장에서도 소나무 몇 그루를 붙잡고 그 흔적을 지키는 고고한 모습이 눈을 한참이나 붙잡는다.

서원 마당에 도착하자 그 옛날 선생과 제자들이 식수로 사용하셨던 우물, 열정(洌井)을 만난다- 맑고 찬 물로 마음을 빡빡 씻어 세상 어디에든 쓰여지는 인재가 되자 다짐하던 샘터. 서원 문을 열고 들어서면 선생이 담양군수 시절에 사랑하던 두향이와 이별하고 세상을 등진 채 공부나 하고 살자며 지은 조그만한 원조 도산서당이 다소곳이 앉아 있다. 참으로 정감이 가는 집이다. 여기 잠시 발걸음 머추고 마루에 앉아 호흡을 고르다 보면 선생의 체취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앞 마당엔 연당을 파 더러운 세상에 자라면서도 때묻지 않는 친구(연꽃)로 삼던 정우당(淨友塘)이 있다. 또 산 밑에 솟는 샘물을 끌어들여 몽천(蒙泉)을 파, 어리고 몽매한 이 땅의 촌놈들이라도 올차게 가르쳐 보겠다는 마음을 묶으신 곳. 서당 동편 사립문을 살짝 밀면 절우사(節友社)란 화단이 보인다. 퇴계가 두향이와 헤어질 때 정표로 받았던 매화나무와 대나무, 국화. 소나무처럼 절조를 아는 친구들을 심어 사랑을 확인하던 곳이다. 이 곳에 들면 갑자기 선생의 외로움을 느끼기도 한다.

도산서원도 강당 중심이라 천지의 법도를 가르치겠다는 전교당(典敎堂)이 중심축을 잡고 그 뒤는 선생을 모신 상덕사(尙德祠)다. 강당에 한존재(閑存齋)가 오르가즘의 필을 당긴다. 포항 식구들이 연꽃을 곱게 우려낸 차를 선생께 올리자, 직접 주역 글로 한존재를 설명하시는 대목이다.

사람이 실력이 있어도 때를 얻지 못하면 실력을 더 쌓으라는 천명을 알아야 한다. 그렇지 않고 머리 쳐들고 세상을 헤딩하고, 제 이름 석자 내세우려면 언제 뒷골목에서 린치를 당해 죽을지 모른다. 그러니 세상을 모른 척 하고- 네 주제가 걱정할 세상이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나 하며 살고, 절대로 어리석은(잘난 체하고 싶은 우쭐하는 마음) 행거지가 세상 유혹에 뽑혀 나가지 않도록 단단히 붙잡고 살아야 할 것이다.

그럴수록 말과 행동이 천방지축으로 가는 꼴은 피하라. 세상은 한 치 오차를 허용치 않고 아귀가 딱딱 들어맞게 돌아가니, 어줍잖은 잣대를 들고 대충대충, 듬성듬성 살아가려고 눈치 때리고 살면, 죽는 놈은 유일하게 자네 혼자 뿐일 것이다. 그러니 절대로 잘난 체 하지 말라. 또 네가 잘나도 그 잘난 것이 네만 잘나면 되지, 남에게 피해를 주어선 안돼! 내 잘 난 점도 세상에 같이 돋보여야지. 네만 잘나고 세상이 피해 본다면 넌 바로 그 자리에 자빠지는 놈이란 걸 명심하라.

이 놈들아! 못된 버릇이 출입하지 못하도록, 너희들 가슴에 빗장을 콱 질러라. 그리곤 너의 본자리에 아버지가 주었던 그 마음, 어머니가 주시던 그 마음을 잘 다듬고 깨끗이 닦아라. 천지가 무너져도 자네는 영원히 살아야 한다. 알았재? 이걸 주역에선 한사존기성(閑邪存其誠)이라 하니 내가 그 두 글자만 빼 <한존재>로 문패 단 거야.

퇴계 선생은 이 대목에서 눈시울을 보였다. 순진한 포항 식구들이, 두향이 아줌마 젖꼭지 사연에 가슴 아파하시는 거라고, 알라리 깔라리 하며 연꽃차를 큰 사발채로 올렸다. 선생의 열받친 심장을 식히시라고…. 문수학당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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