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품집을 모신 옥진각(玉振閣) 앞에 섰다. 맹자가 공자님을 두고 경전을 두루 집대성한 분이니 음악으로 비유하자면 금성옥진(金聲玉振)이라 했었지. 이는 종소리로 그 악의 시작을 알리고 옥소리로 그 악을 마감하는 대명종시(大明終始)의 뜻을 담는데. 금성(金聲)은 시작이요 옥진(玉振)은 마감이란 뜻이래. 중국 곡부, 공자님 사당으로 들어서면 금성옥진문(金聲玉振門)이 당당하게 위용을 뽐내는 걸 볼 거야. 여기 도산에 옥진각을 세운 깊은 뜻은 공자님의 학문을 내 퇴계가 마무리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표현한 것으로 봐달라고 했다.

마당 안으로 들어서자 마주보고 있는 똑같은 건물이 서 있다. 이곳은 학생들이 거처하며 공부하는 곳인데 동쪽이 박약재(博約齋)이고 서쪽이 홍의재(弘毅齋)란다. 박약(博約)은 성인의 학문을 넓게 배우되 행동 거지가 예를 벗어나지(博學於文 約之以禮) 말고, 홍의(弘毅)는 선비의 마음 씀이 한없이 넓고 뜻이 더 없이 굳세라고 경책을 쓴 거래. 도학의 성공이 너무 어렵기 때문에. 선비들의 학문 연마하는 책임이 막중함을 힘 준 거지요(士不可以 弘毅 任重而道遠).

어느 누가 저 하늘과 땅 속에 묻혀 있는 진리 캐는 일이 자신의 임무요, 사명이라고 여기는 자가 있단 말인가. 선생의 안타까운 심정을 잠시 읽을 수 있었다.

아래로 내려오면 누구나 아는 글로 광명실(光明室)을 본다. 글 그대로 만권서적(萬卷書籍) 혜아광명(惠我光明), 수많은 책이 나에게 광명(지혜)을 준다는 뜻이다. 독서만권이라. 만권의 책을 읽으면 해와 달 같은 빛을 밝힐 수 있건만.

들어 갈 때 감탄했던 진도문(進道門)의 명필을 돌아 보고 다시 놀란다. 손가락으로 진도문(進道門)을 따라 써 보는 재미를 보란다. 기기묘묘한 필법이다. 서원 가장 아랫자리 역락서재(亦樂書齋), 제자들이 힘을 합쳐 세운 집이라며 현판은 퇴계 선생의 친필이란다. 역락(亦樂)이라. 저 안강에 회재의 옥산서원 정문도 역락문(亦樂門)이 아니던가. 유붕(有朋)이 자원방래(自遠方來)하니 불역락호(不亦樂乎)라. 구구단처럼 외우고 다니던 귀절이다. 선택 받은 내가, 훌륭한 스승 모시고 진리를 찾으니 기쁨을 감추지 못해 역열(亦說)이요, 세상 사람들이 몰라줘도 나는 시기심도, 외로움도 타지 않고 꺼떡없이, 오로지 하늘하고만 똥배짱으로 거래하니 군자가 아니고 무엇이랴.

공자님 계시는 곡부와 퇴계선생 도산을 번갈아 오가며 공감하는 것은, 천년이 가고 만년이 가도 세상 사람들이 마음 놓고 퍼 먹을 수 있는 우물을 파야 한다는 것. 뚜껑 덮지 말고. 누구나 오가며 퍼 먹을 수 있는 우물, 누가 한 모금 마신다고 그 우물이 마르고, 누가 마시지 않는다고 넘치지 않는 - 맑고 찬 만고의 우물 말이다.

그래서 선생은 그것을 행여나 제자들이 자신의 뜻을 잊을새라 서원 입구에 열정(冽井)이란 샘을 파 놓았단다.

이번 도산서원 기행은 순전히 주역 수업이었다. 천하의 퇴계니까 저 어려운 주역을 쉽게 풀었지. 퇴계는 공자와 주역으로 맞짱 뜰 요량으로 스물부터 주역에 심취했는데, 그만 평생 건강을 다치고 만 안타까운 사실을 들었다.

다시 서당 안에 있는 작은 정우당의 연꽃으로 밤새도록 연차를 마시며 선생과 양껏 풍류다도의 맛을 보았다. 고마운 여름 비는 출발에서 끝까지 동행했다. 문수학당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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