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들이 즐겨 찾는 산이면서 1960년대 이후 울산의 주산으로 자리잡은 울주군 청량면 문수산(文殊山)은 조선 중기시대 국풍 남사고(南師古, 1509~1571)가 울산의 발복을 예언했던 곳이다.

남사고는 본명보다 호인 격암(格庵)과 예언서인 '격암유록'으로 유명한 풍수가이다. 그는 1575년 동서분당, 1592년 임진왜란 등을 명종 말기에 이미 알아맞힌 것으로 전해진다.

약 400년 전 남사고는 문수산(당시 영축산)에 올라 울산의 명당을 3군데 지적했다. 첫번째는 은월봉으로 당시 지역 향리들은 이 소문을 듣고 앞다퉈 은월봉 인근에 무덤을 썼다고 한다.두번째 명당인 한림(翰林)은 지금 울산공업고등학교가 들어서 있는 곳으로 많은 인물이 배출됐고, 세번째 명당 왕생(王生)이혈은 현 시청과 삼산 일대 등 지역의 행정과 부가 밀집된 곳이다.

풍수에서 명당을 찾는 관산지점은 명당 만큼이나 중요하다. 울산의 풍수를 이야기할 때 관산지점에 해당하는 문수산의 중요성은 크다.

풍수전문가 강상구씨는 "문수산은 울산 어느 곳에서도 보이는 산으로 풍수상 지역에 따라 문필봉과 노적봉으로 보인다"며 "문필봉은 학자와 문인, 정치인을 발복하며, 노적봉은 부자를 배출하는 형상으로 알려져 있다"고 말했다.

문수산의 풍수발복이 산신인 '변재천녀(辨財天女)'의 신통력과 일치하는 점도 흥미롭다. 울산문화원의 '울산지명사'에 따르면 변재천녀는 목숨을 늘려주며, 재산을 늘게 해주고, 원수를 쫓아주는 능력이 있다. 변재천녀의 능력 때문인지, 풍수 발복의 영향 때문인지 울산은 현재 국내에서 가장 소득 수준이 높은 도시가 됐으며,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이후락, 최형우, 김태호 등 정치인과 최현배 같은 학자를 배출했다.

특히 문수산 아래 둔기 마을에서는 롯데그룹을 일으킨 신격호 회장이 태어났고, 인근 오복마을은 한때 국내 정치를 흔들었던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의 고향이다. 문수산 남쪽 천길 낭떠러지 벼랑에 위치한 문수사에는 신격호 회장과 관련된 일화가 전해진다. 가난했던 둔기 마을의 한 아낙이 재물 복 있는 아이를 낳게 해달라고 문수사에서 기도한 뒤 낳은 아들이 신격호 회장이라는 것. 이후 신 회장은 노모의 간청을 받아들여 1984년 대대적인 불사 시주를 했고, 지금의 문수사 가람 형태가 갖춰지게 됐다.

아낙의 불공으로 가운을 일으켰다는 문수사도 문수산 못지 않은 풍수적 해석이 가능하다. 문수사의 풍수 형국은 천길 낭떠러지 바위 위에 제비가 집을 지은 듯한 '연소형(燕巢形)'이다. 3월3일 삼짇날 나타나 봄을 알려주는 제비는 흥부를 부자로 만들어 주고, 해충들을 잡아먹는 길조(吉鳥)이다. 재물과 액땜, 건강, 장수가 연소형 명당의 풍수발복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밖에 문수사를 젊은 여자가 꽃을 바치는 '옥녀헌화형' 명당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법당 앞 남암산이 왼팔을 가지런히 하고 오른팔을 길게 뻗어 문수산에 무언가를 전해주는 모양새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원래 문수사는 명당의 조건을 갖춘 곳이 아니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절 앞 터가 바위가 푹 꺼진 듯한 형태를 하고 있는데, 풍수에서는 움푹 꺼진 부분을 결(缺)이라고 해서 흉(凶)상으로 보기 때문이다.

풍수전문가 강상구씨는 "풍수지리학계에서 문수사는 움푹 꺼진 부분에 제비가 집을 짓듯 법당과 요사채를 지어 풍수적 결함을 해결한 경우로 잘 알려져 있다"면서 "문수산도 울산 쪽에서 산 전체를 바라보면 마치 산모가 아이를 잉태해 해산하는 모습과도 닮아 있는 등 다양한 풍수적 해석이 가능한 명산"이라고 설명했다. 도움말 강상구 풍수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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