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2년 152㎝의 작달막한 화가 지망생이 예술의 도시 파리에 정착했다. 그가 비운의 요절화가 앙리 드 틀루즈 로트렉이다.

그는 프로방스 귀족 가문 태생이지만 귀족 생활의 맛도 보기 전에 두 가지 사고로 더 이상 키가 자라지 않는 천형을 받았다. 하나는 부모의 근친결혼에 의한 것으로 추정하며, 또 하나는 어릴 때 자기 집 이층 계단에서 굴러 떨어지는 사고를 당한 뒤 지팡이를 집고 다녀야 했다.

그의 아버지와 삼촌이 아마추어 데생 작가였던 관계로 자연히 그림과 가까워지면서 짧은 기간 동안 아틀리에 보나 미술학교에서 수학했다. 그리고 부모님의 만류를 뿌리치고 그림그리기를 고집했다. 이 때 젊은 작가 베르나르, 고흐등과 사귀면서 조형적인 관점에 대해 연구하고 수많은 초상화를 그렸다.

그는 자신의 신체적인 결함을 비관, 방탕한 생활을 하며 카바레 공연이나 창녀를 주제로 많은 그림을 그렸다. 그는 1885년 혼자 독립해 몽마르트르 언덕 밑 누추한 다락방 생활이 시작했다. 그는 몽마르트르에 정착하게 되면서 회화와 일러스트에 몰두해 많은 작품을 남겼다. 그는 당시 회화의 여러 유파의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그 이론에 구애받지 않고 자기의 세계를 구축해 나가는 개성 있는 작가였다. 그는 프랑스 많은 잡지에 자신의 기사와 작품이 자주 등장하는 인기작가로 명성을 높였다.

그는 술을 좋아했다. 유흥가를 전전하면서 카페나 캬바레 풍경, 무희, 서커스 등 화려함 속에 감춰진 비애를 들추어내고, 일상의 현실을 숨김없이 표현하면서 인간 내면의 심리묘사까지 그려냈다.

그가 주로 다니던 술집은 몽마르트르 언덕아래에 있는 '물랭루즈'라는 술집이었다. 그는 언제나 한 구석 자리에서 빠른 속도로 내부의 움직임들을 스케치했다. 물랭루즈의 주인은 몸이 불편한 화가 툴루즈 로트렉에게 고정좌석을 만들어 주고 한 잔의 술을 제공하는 호의를 배풀었다.

힘들게 살아가는 화가에게는 더없는 안식처이면서 작품의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곳이기도 했다. 화가 로트렉은 이 고마운 술집에 무언가 보답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그는 다리를 들고 캉캉춤을 추는 무희와 중절모를 쓰고 근사하게 폼을 잡은 신사가 그려진 물랭루즈의 광고 포스터를 석판화로 제작했다. 그것이 세계 최초의 광고 포스터가 되었으며, 이로 인해 로트렉이 더욱 더 유명해진 계기가 되었으니 이 얼마나 아이러니컬한 일인가?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물랭루즈는 파리에서 리도 쇼와 함께 빠질 수 없는 명소가 되어 성업 중이다. 하지만 화가 로트렉은 알콜 중독과 무절제하고 방탕한 생활로 인해 성격 파탄으로 병원에 입원했다. 그러나 그는 병원에서 쇠약해진 몸으로도 작업을 했다.

퇴원 뒤 친척과 함께 프랑스 여러 지역을 여행을 하고 1900년 겨울 보르도로 이주하여 정착했다. 이 곳에서 그는 마지막 미완의 작품 '비오제독'을 남기고 37세의 나이로 요절했다. 지금도 몽마르트르 언덕의 기념품 가게에는 물랭루즈 포스터가 인기를 누리고 있다. 다시 한번 앙리 드 틀루즈 로트렉의 발자취와 흔적에 젖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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