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모스 하늘거리는 가을 하늘이 너무 맑다. 차맛이 엄청 '땡기는' 때이다. 이런 날 사랑하는 사람을 모시고 진한 차를 나누지 않으면 사랑의 샘물이 말라들 것이다.

다도에선 물 가리는 능력을 얼마나 지니고 있나를 제일로 친다. 다신전(茶神傳)의 물 가려내는 품천(品泉)을 보면 산꼭대기에서 나오는 샘물이 가장 맑고 가볍다고 한다. 산밑 샘물은 맑고 무겁고, 마사도 아닌 흙 샘물은 싱겁기 짝이 없고, 모래 땅 샘물은 맑고 차갑고, 돌속으로 나오는 샘물은 기가 차게 맑고 달콤하단다. 누른 황석으로 흐르는 물이 댓길이고, 청석에서 솟는 물은 쓸모가 적다. 흐르는 물은 고여 있는 물보단 낫고, 그늘진 물은 직사 광선을 바로 받고 있는 물보다 좋단다.

다인은 천하에 귀한 차일수록 귀한 물을 얻는 것을 원칙으로 삼는다. 육우는 물 떠오다가 엎지르고 다른 물로 대체해 온 사람 앞에, 여기까진 일등 물, 여기부턴 이등 물, 삼등물로 식별하는 바람에 주위가 기절초풍했다지 않던가. 또 물 담은 독마저 그늘진 마당 한켠에 놓고 비단으로 덮어 별의 기운을 듬뿍 받게 하는 걸 잊지 않는다. 밤 하늘의 신령스러움을 물 항아리에 가득채우기 위해서.

차는 오로지 물의 신성스러움을 제일로 치니 차와 물이 신령을 잃으면 도랑물에 차를 우려 먹음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차는 하늘이 내려 준 신령스런 영초라 하니 영물을 얻은 다인이, 천하의 명마를 얻은 백락처럼, 대접을 잘 해야 한다. 이런 이치를 알면 다도는 구부 능선을 넘어 간 것이다.

중용을 보면, 공자님은 세상에 다도가 행해 지지 않는 까닭을 눈치챘던 것 같다. 까닭인즉 차를 좀 안다고 거들먹거리는 자는 너무 지나쳐서 찻잔을 머리에 인채 돌부리에 채여 넘어지는 것조차 모르고, 또 어리석은 자는 다도가 뭔지 모르고 한복이나 차려 입고 남의 잔치상에나 다니며 술따르듯 차를 따르고. 어진 놈은 너무 물러터져 천방치축를 모르니 차보단 폼이 좋고 멋이 좋아 좇아 다닌다.

세상 사람들은 맛과 향을 보며 동원할 수 있는 오감을 다 동원하여 밥을 먹고 차를 마시지만 대장금처럼 확실하게 맛을 아는 이가 드물지 않던가. 그러니 보이지 않는 도야 어림 짐작이나 하겠던가.

넘치는 자들은 차를 왜 마시는지, 찻물이 왜 끓는지를 모른다. 이들은 어리석게 남에게만 가르치려고, 위세하려고, 다 떨어진 폼으로만 차를 마시기 때문이다. 숫돌이 자신이 닳아 없어지는 걸 까맣게 모르고 칼 더러 칼 갈러 오지 않는다고 탓하듯.

다도하는 사람들은 산꼭대기 샘에 용출하는 물처럼 가장 맑고 청아하게 거듭나야 하고, 돌틈으로 흐르는 샘물처럼 맑고 달콤해 누구나 찾아 마시는 소락제호 같은 세상 벗이 되어야 한다. 법당에 쌓인 먼지를 매일 닦는 수행자처럼 자신의 찻잔을 깨끗이 닦자.

자~ 오늘은 영축산 정상에서 솟아나는 샘물로 다린 차나 한잔 합시다.

문수학당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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