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 정맥의 최고봉. 원효대사의 마지막 수도지로 알려진 대운산(742.7m). '동국여지승람'에는 불광산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언제부터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었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비록 이름은 다르지만 모두 "광명한 산'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이 산은 빼어난 절경을 가지고 있지는 아니지만 적당한 능선과 기복이 산행의 즐거움을 더해 준다는 데는 모두 이의가 없을 것이다.

대운산에는 중국의 '해동고승전'에도 그 일화가 전해져 내려오는 영남 제일의 명당, 내원암이 자리 잡고 있으며 이 암자는 신라시대 대원사의 아홉 암자 중 하나이다.

이 산을 오르는 길은 많으나 대체로 산꾼들은 장안사를 기점으로 해서 척판암을 통해 정상에 오르는 길을 택하지만 울산 12경의 명성에 걸맞는 풍광을 즐기기 위해서는 온양읍 운화리에서 출발하는 것이 좋다. 남창 4거리에서 부산 방면 쪽으로 1km 정도가면 과적차량 검문소가 나오고 이를 지나면 하대, 그리고 곧이어 상대마을이 나온다. 상대마을 초입에 12경 안내 입간판이 서 있으니 찾아들기는 아주 쉽다.

타고 온 차량은 제3주차장에 세워두어야 한다. 만보로, 도통골로, 종주코스 등 3개의 등산길이 안내되어 있는 주차장에서 조그만 다리를 건너면 내원암과 애기소로 갈라지는 갈림길이 나온다. 어느 곳을 택해도 아름다운 계곡을 만나게 된다. 내원암 계곡은 도통골 골짜기의 계곡과 대원암 주위를 흐르는 계곡으로 나누어진다. 도통골 계곡 쪽에는 박치기골과 도통골이 있다.

도통골은 신라시대 원효대사가 이 계곡 인근에 있는 용심지라는 암자에서 도를 닦았다는 얘기가 전해 오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박치기 골은 이 계곡에 있는 바위들이 흡사 머리를 땅에 붙이고 물구나무 서기를 하고 있는 모습이라고 해 붙여졌다고 한다. 이들 계곡은 아무리 가물어도 물이 줄거나 마르지 않는다는 것이 자랑이다. 내원암 앞으로 흐르는 물 역시 맑기가 수정 같아 감탄이 저절로 튀어 나온다.

특히 대운산 계곡은 계곡 주위의 펼쳐져 있는 벼랑이 험준하면서도 아름다워 소금강이라고도 불린다. 이 계곡에는 내원암 못 미쳐 마당 바위가 있고 이 바위 맞은편에 아들바위가 있다. 이 중 아들바위는 돌을 던져 바위 위에 올리면 생남을 한다는 전해오고 있어 요즘도 이곳을 지나는 등산객들이 돌을 던지곤 한다. 또 이 계곡에는 초가집만한 바위를 주위에 둔 소가 있는데 이 소를 '애기소'라고 부른다. 이 소는 경치가 아름다워 사람들의 발길을 오래도록 붙잡아 둔다.

내원암 계곡의 특징은 너른 바위들이 즐비하다는 것이다. 요즘같이 가을바람에 몸 맡기고 누워 물소리, 바람소리 들으며 한껏 사치를 부려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이 아름다운 계곡에도 쉬 아물지 않는 상처가 있다.

끝나지 않은 전쟁으로 불리는 국민보도연맹 사건이 바로 그 것이다. 울산, 양산, 김해, 진영 등 동부 경남지역은 보도연맹 학살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지역이다. 특히 울산에서 저질러진 보도연맹 학살중 최대 규모는 바로 대운산과 웅촌면 오복리 오복재 등 두 곳. 대운산에서만 700여명 이상이 학살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들 중 서생 지역에서 끌려온 보도연맹원들도 있었으나 대다수는 울산에서 실려 온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1960년 유족들에 의해 유골이 발굴될 때 대운산은 그야말로 관으로 가득 찼고 그 많은 관들을 끌고 내려오느라 풀들이 모두 쓰러져 산비탈길이 생겼을 정도였다고 한다. 1960년 6월 13일자 국제신보엔 당시 트럭을 운전했던 운전기사의 안내로 870명이 몰살당한 16개의 무덤을 찾아냈다는 기사가 보도되기도 했다.

가을빛을 받아 한창 단풍이 들기 시작하는 대운산 계곡의 붉은 빛은 이들의 원혼을 달래주는 듯해 마음이 숙연해진다.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천천히 산길을 오르다 보니 다람쥐의 앙증맞은 모습이 자주 눈에 띈다. 사람을 봐도 도망칠 궁리를 하지 않으니 지 눈과 내 눈이 맞닿아 반갑기는 하지만 들은 이야기가 있어 마음 한구석이 짠하다. 등산객들이 버리는 귤껍질, 오이껍질 등을 주워 먹은 다람쥐는 불임 확률이 높다고 한다. 또 도토리묵 만들어 먹는다고 꿀밤 싹쓸이하는 행태는 다람쥐 볼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시사한다. 특히 사과껍질은 잘 썩지도 않아 환경 오염의 원인이 되기도 하니 우리들의 발걸음은 산 속에서 더욱 조심해야 할 일이다.

내원암 계곡 즐기기를 끝내고 자투리 시간을 이용, 인근 장안사나 척판암 등 역사의 향기 가득한 명찰을 둘러보는 것도 마음을 풍요롭게 할 것이 틀림없다.

가을, 우리 마음을 물들이기 시작하는 계절, 경쟁과 피곤의 시간에서 잠시 뒤로 물러나 가슴 환히 밝혀줄 대운산 내원암 계곡에 몸을 맡겨 보자. 맡긴 만큼 행복 지수는 올라갈 것이다.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