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전령이 뒤덮은 창녕 우포늪. 터질 듯 팽창했던 초록 기운은 이미 쇠잔해졌다. 잠깐 내리쪼이는 가을볕에도 억새와 갈대들은 바스락바스락 목마른 소리를 냈다. 우포에서 해마다 '시생명제'를 여는 등 늪지기를 자처하는 창녕 사람 배한봉(43) 시인과 하루해를 우포늪에서 보냈다. 여행에 앞서 배 시인은 자신의 시 한 구절을 먼저 들려주었다.

"먼지 일으키며 차를 타고 달려온 그들은 / 늪을 보러 온 것이 아니라 소문을 좇아 온 것이다 / …풀벌레 소리 하나 들어보지 않고 우포늪 다 보았다고 / …마음을 열지 않는 한 원시는 / 원시 속에 숨어 풀잎하나 흔들어 주지 않는다 / …구경하기 좋은 곳 어디냐는 그들에게 / 걸으며 느끼지 않고서는 늪의 정신 만날 수 없다고 / 왜가리가 나 대신 목을 쭉 빼고 울어주었다" ('그들이 황무지를 가진 것은' 중 일부)

우포늪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또 가장 넓은 자연 늪지다. 소 목덜미를 닮은 고개마을 옆 우포를 비롯해 나무가 많이 떠내려오는 목포, 모래가 많은 사지포, 규모가 제일 작은 쪽지벌 등 네 개의 늪을 모두 아우른다. 창녕군 유어, 이방, 대합, 대지면 등 4개 면 13개 마을에 걸친 70만평 원시 늪이다. 350여종 희귀한 생물들이 서식, 동식물의 천국을 이루고 있다.

규모가 큰 만큼 접근로가 꽤 많다. 먼저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유어면 세진리 쪽 입구로 들어섰다. 솔밭을 낀 5분 거리 진입로는 200여m 아래 수문장 미루나무와 맞닿아 있다. 그 너머 펼쳐진 우포는 뭍인지 물인지, 시작과 끝을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아득하기만 하다. 우포 옆 산책로를 걷다보면 부들, 자라풀, 생이가래, 개구리밥 등 표면을 빼곡이 덮은 부초들이 선연하게 다가온다. 연회장의 융단처럼 보드랍게만 여겨지던 늪지를 가까이 처음 접하면 섬뜩한 느낌도 없지 않다. 먹빛 뻘과 흐느적거리는 수초줄기가 발목을 휘감을 것 같은 착각에 순간 섬짓하기까지 하다.

이른 새벽 그물을 치고 돌아온 어부의 나무배는 가을영상을 담으려는 사진 애호가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배 시인은 "새벽 안개에 휩싸인 늪을 촬영하기에는 일교차가 심한 이맘때가 안성맞춤"이라 알려준다.

한눈에 다 들어오지 않는 우포는 전망대 망원경으로 보다 가까이 접할 수 있다. 아이를 동반한 가족 여행이라면 세진리 주차장 입구의 우포생태학습원(055-532-7856)을 둘러보는 것이 좋다. 우포늪의 역사와 동식물 도감, 관련 사진자료가 다양하다. 매월 마지막 주 일요일은 생태체험 답사프로그램이 운영된다.

이방면 사지포 쪽으로도 들어갔다. 물이 많을 때는 길이 끊긴다는 갈대밭을 헤치고 들어서야 한다.

이 지역 특정야생식물인 가시연꽃 군락을 볼 수 있는 행운을 만났다. 상대적으로 인적이 드문 이곳은 늪지화하는 과정을 직접 느낄 수 있는 몇 안 되는 장소라 한다. 갈대와 온갖 수생식물이 짓이겨진 바닥에서 흙내, 물내가 뒤섞인 묘한 냄새가 풍긴다. 부초가 걷히고 드문드문 수면이 드러난 곳도 많다. 정지한 듯 고요하기만 하던 늪지의 물살이 꽤 빠르게 흐르는 장면이 이채롭다.

"이맘때면 '늪의 냄새'가 진동하기 시작한다"는 배 시인은 "10월이 지나면 물풀이 점차 사라지고 늪 가장자리부터 밑바닥이 드러나기 시작한다"고 한다. 겨울을 나기 위해 먼 길을 날아온 때 이른 겨울철새들이 서너 마리씩 떼지어 놀거나 휴식을 취하고 있다.

아쉽게도 목포와 쪽지벌은 제방을 따라 자동차를 타고 가야 했다. 몇 가구 안 되는 조그만 마을들이 우포늪을 끼고 나타났다가 사라졌다가 반복한다. 가을걷이가 한창인 마을과 늪지를 오가다 보면 우포늪은 더 이상 생태계의 보고도 아니고 관광지는 더더욱 아니고 우리네 익숙한 삶의 일부분이 된 듯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온다.

글·사진=홍영진주부리포터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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