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적 맞선 임란의병 항전 현장 역사유적 보전 후세에 전해야

울산시 북구 농소지역의 대표적 문화유산으로 꼽히는 '관문성'은 북구 중산동과 천곡동, 달천동을 거쳐 울주군 범서면 두산리까지 연결되는 산성으로 총 길이가 12㎞에 달한다.

이 길이 때문에 일명 '만리성'이라고도 불리는 '관문성'은 지금은 북구 천곡동 일대에만 일부분이 남아있다.

'관문성'은 남쪽과 동쪽 바다로부터 오는 왜구를 막기 위해 신라 성덕왕 21년(723) 11월에 쌓았으며 원래 이름은 모벌군성인데 남으로부터 신라 수도 경주로 들어오는 관문의 역할을 하는 성이라 해서 조선시대에 '관문성'이라 이름 지었다.

이 성은 산을 따라 성을 쌓아 가다가 산이 험한 벼랑같은 곳은 지형을 이용하고 성은 쌓지 않았으며 4각형 석재를 5내지 6단으로 쌓고 그 위에 자연석을 쌓는 공법을 이용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당시 '관문성'은 장정 3만9천262명이 동원돼 산중복을 따라 축성한 석성이지만 현재 대부분 퇴락하고 동해를 면한 동쪽 끝에 약간의 원형을 볼 수 있는데 이것 역시 정상부는 서서히 허물어지고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안타까움을 자아내게 하고 있다

특히 '관문성'은 이같은 지리적 조건으로 인해 임진왜란 당시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의 역할을 했다.

역사의 기록을 보면 조선시대 선조 27년 2월 17일 왜적이 잠입하자 의병들이 대오를 3로로 갈라 관문성의 남북에 매복하고 18일에는 김흡, 김범, 고처겸, 김순경 등 울산의 의병들이 합세, 왜적을 격퇴시켰다고 전해진다.

이처럼 '관문성'은 우리 지역 뿐만 아니라 국토를 수호하는데 큰 역할을 했던 성이지만 성의 대부분이 유실된 지금 많은 사람들의 기억속에 잊혀져 가고 있다.

울산시 북구청은 최근 이 '관문성'을 제대로 보전하면 울산이 갖고 있는 국보 천전리 각석과 반구대 암각화와 연계한 관광코스의 개발이 용이할 것으로 보고 '관문성' 역사탐구와 홍보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권병석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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