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여행의 설레임 안고 떠나다

금강산 오가던 설봉호 제주행 여객선 부활 이른 아침 제주 도착…눈덮힌 한라산 장관

"배 타고 제주도 간다"고 하니까. "수학여행 가냐"고 반문하며 아예 손사래다. 막무가내로 놀았던 즐거운 추억도 있지만 그보다는 후줄근한 배 안 풍경과 지독한 배멀미가 더 선명하게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런 배가 아니고 금강산 가던 설봉호래." 약간 수그러들지만 "멀미 안해"라고 다시 한번 확인한다. "배 안에서 2박하고, 3끼 식사도 제공하는데 9만9천원이래, 한라산도 데려다주고 온천도 시켜준대."

배를 타고 제주도를 가는 사람이 드물어졌다. 편리한 비행기 덕이다. 쌩하니 날아갔다 오면 될 걸, 12시간씩 배를 타고 간다니. 걱정스럽기도 하고 한심하기도 하다.

여행은 어차피 인생의 속도를 늦추는 일일터. 한번쯤 느리면 어떠랴, 싼 맛에 한번 가보지 뭘. 별 기대 안하고 떠난 여행은, 결론부터 말하면 대성공이다. 재미있었다. 학창시절처럼 그렇게 신나고 즐거웠다. 제주가 늘 그랬지만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아름다운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돈도 시간도 알뜰하게 썼다는 만족감까지.

9일 금요일 서둘러 일을 마무리하고 4시쯤 울산 무거동을 출발했다. 여행사에서 6시까지 여객선터미널에 도착하라고 했다. 초등학교 6학년생 1명까지 일행은 4명. 어렵게 부산시 중구 연안여객터미널을 찾았다. 배는 7시 출발이다.

배를 타자말자 배정된 방을 찾아 짐을 내려놓고는 배를 한바퀴 휘둘러보았다. 별달리 볼 건 없었다. 3층까지 객실이 들어차 있고 부대시설로는 식당 외에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출 수 있는가라오케, 간단하게 맥주나 칵테일을 한잔 할 수 있는 바, 과자와 음료수를 파는 스넥코너, 컴퓨터 게임방이 전부다. 객실은 모두 90여개로 400명을 수용할 수 있다는데 사람들은 많지 않았고 대부분이 한라산 등산객이거나 원도로 가는 낚싯꾼들로 보였다.

식당을 찾았다. '선상뷔페'. 이름은 그럴싸했지만 음식 가짓수는 많지 않았다. 곰탕과 나물, 찌개 등 간단하게 준비된 음식이지만 맛깔스러웠다. 8천원이다. 이날 저녁은 여행사 경비에 포함돼 있지 않다. 포만감을 안고 객실로 들어와 TV를 켰다. 지지직거리고 상태가 영 안좋다.

갑판으로 나갔다. 바람이 세차다. 하늘에 반달이 떠 있으나 사방이 캄캄하다. 배 아래로 내려다보니 배가 가르는 물살이 제법 빠르다. 거의 움직이지 않는 것 같더니.

설봉호는 금강산을 다니던 배다. 지난 2001년 1월6일에 속초~장전항 금강산 해로관광에 투입돼 3년동안 393회 16만7천여명을 금강산으로 실어나르고는 올해 1월10일 마지막 운항을 했다. 금강산을 오가는 육로관광이 개척되면서 용도폐기된 것이다. 지난 2월15일부터 동양고속훼리(주) 소속으로 부산과 제주를 오가는 여객선이 됐다. 국내에서 운항되는 최대 규모 여객선이다. 길이 114.5m, 폭 20m, 시속 17.8노트의 9천258곘급이다. 지금은 일정상 부산과 제주 사이의 바다 위에 12시간동안이나 떠 있지만 속초와 장전을 3시간30분만에 달리던 배다.

오전 7시 제주여객터미널에 도착했다. 기다리던 여행사 직원을 따라 관광버스를 탔다. 부산에서 온 단체여행객과 일행이 됐다. 제주를 수없이 여행했지만 가이드투어는 처음이다.

먼저 해장국 집에서 아침을 먹었다. 음식도 괜찮은 편이다. 한라산 성판악휴게소를 향했다. 성판악휴게소는 한라산 750고지로 한라산 산행의 기점이 되는 곳이다. 조용한 제주의 아침, 눈 쌓인 한라산, 나뭇가지에 핀 상고대. 눈만 보고도 모두가 탄성이다. 성판악휴게소엔 벌써 산행을 하려는 사람들이 아이젠 등 눈산행 채비를 갖추느라 분주하다. 산행계획이 없는 우리는 그저 눈을 밟는 것으로도 즐거웠다. 지난 주말에 눈이 많이 왔다는데 사람 발자국이 없는 곳엔 발목이 푹푹 빠진다. 차디찬 약수를 한바가지 마셨다. 물도 맛있고 공기도 달다.

한라산을 내려와 이승만 전 대통령 내외가 마련했던 휴양시설인 파라다이스호텔로 향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의 기념관과 화락원(和樂園)이라 이름붙인 정원이 볼거리다. 자연과 조화를 이룬 산책로에서 바라보는 바다경관은 장관이다.

상황버섯재배농장으로 데려간다. 서귀포에 관광객도 안오고 감귤농사의 소득도 줄어 서귀포가 아니라 '서글퍼'가 됐다는 너스레와 함께 분말상황버섯을 사라고 야단이다.

삼계탕으로 점심을 먹고 온천을 했다. 식당과 온천이 같이 있다. 제주에도 탄산온천이 얼마전 개장했다. 단맛 빠진 청량음료 같은 온천물은 혈압조절에도 좋고 혈당수치도 낮춘다고 한다. 피부보습효과도 탁월하다고 자랑이 대단하다.

아침 일찍 시작된 여행이라 하루가 길다. 온천까지하고도 오후 3시밖에 안됐다. 중국기예쇼를 하는 해피타운으로 향했다. 중국인 몇명 데려다놓고 몇가지 곡예를 보여주는가보다 했더니 기량이 '장난이 아니다'. 중국 상하이에서 보았던 수준 이상이다. 직경 6m의 둥근 통안에서 7명의 남자가 펼치는 오토바이 쇼는 말할 것도 없고 그네에서 펼치는 공중곡예, 비단천 공연, 신체를 공처럼 굴리는 꼬마들, 스릴이 넘친다. 1시간동안 박수가 끊이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수산물센터로 데려간다. 옥돔이랑, 갈치랑, 간고등어랑, 오징어랑, 젓갈이랑, 수산물들을 사란다. 이게 제주 여행의 마지막이다. 가이드의 친절한 설명이 함께하는 국내 여행이 새삼 낯설지만 싫지는 않다. 저녁 7시 제주항을 출발해 부산을 향했다. 출발할 때만 해도 지루해 할까봐 걱정되었던 초등학생이 넙죽 인사를 한다. "재미있게 해주셔셔 고맙습니다"

#설봉호

 ◇운항 △제주 출항 = 화 목 토 오후 7시 △부산 출항 = 월·수·금 오후 7시 ◇운항소요시간 11시간 ◇운임 △일반객실(마루) 3만6천원 △4인실 5만3천원 △2인실 21만원 (064·751·1901)

#여행상품

◇요금 9만9천원(일반 객실 6~8인, 선상 2박, 3식 제공) ◇일정(A) △1일 부산 출발 △2일 조식(해장국)-한라산 750고지 성판악 휴게소-화락원-외돌개-약천사-관광농원(감귤, 상황버섯농장)-중식(탄산삼계탕또는 탄산전복죽)-산방산 탄산온천욕-중국기예단쇼-승선 △3일 부산 도착
 ◇일정(B) △1일 부산 출발 △2일 조식(해장국)-한라산 750고지 성판악 휴게소-등산-중식(도시락)-승선 △3일 부산 도착 (052·271·6633)

정명숙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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