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가 된 바다의 길잡이

'생각하라 저 등대를 지키는 사람의~ 거룩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마음을~'

경북 포항 호미곶 '국립등대박물관'을 찾아가는 길, 등대지기라는 노래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 한국 등대의 100여년 역사를 정리해둔 그곳엔 지금도 등대지기가 있을까.

울산시 강동에서 바닷가로 난 길을 따라 100㎞ 가량 달리면 우리나라 지도에서 호랑이 꼬리처럼 불쑥 튀어나온 곳에 자리한 국립등대박물관을 만난다. 한국 최초이자 유일한 등대박물관이다. 등대의 역사와 그 모습들을 비롯, 등대지기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가하면 해양산업의 어제와 오늘 모습들을 전시하는 등 바다의 길잡이 등대와 바다의 다양한 모습을 담고 있다.

1985년 제1전시관을 개관, 2002년 제2전시관과 야외전시관 등 부대시설을 추가로 건립하면서 현재 모습으로 재개관했다. 2만700여평의 부지에 등대와 해양관련 자료 등 전시물은 대략 3천점이 넘는다.

박물관 정문에 들어서면 직사각형 모양의 제1전시관과 삼각뿔 형상의 제2전시관이 눈에 들어 온다. 동해바다를 배경으로 한 박물관 정경을 보고 있노라면 눈이 즐겁지 않을 수 없다.

제1전시관은 '등대관'이다. 입구에 들어서면 호미곶에 대한 설명과 영일만이 형성된 배경을 설명하는 영상과 만난다. 지하로 이어지는 계단에서는 발걸음을 늦출 필요가 있다. '송대말 등대(포항)', '마라도 등대(제주)', '거문도 등대(여수)', '소매물도 등대(마산)' 등 전국 등대 사진들이 전시돼 있다.

작은 인형들로 등대에 대한 설명을 해놓고 있다. "이게 뭐꼬?"라면서 단추를 꾹꾹 눌러보는 어르신들은 움직이는 인형이 신기한가보다. 단추를 누르자 흔들리는 배에서 그물을 끌어 올리는 선원이 "선장님 오늘은 만석이겠습니다~"면서 껄껄 웃는다. 갑자기 폭풍이 일자 상황은 긴급해지고 선원들은 "등대를 찾아라"며 외쳐댄다. 이때 멀리서 등대의 불빛이 반짝이고 선원들은 "살았다~등대다!"를 외치면서 끝이 난다. '등대가 배를 안전하게 인도한다'는 메시지를 던지는 재미난 모습이다.

인형들의 활약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포항지방해운항만청 하이락, 성태훈 이라는 이름표를 단 두 개의 인형은 등대원 근무 복장을 보여주고 60~70년대 '등대원 숙소'와 '등대원 사무실'에도 인형이 빠지지 않는다.

숙소에서 60~70년대 유행했던 트레이닝복을 입은 채 연필을 쥐고 있는 등대원의 모습은 배꼽을 잡게 만든다. 등대원 사무실은 또 어떤가. '쏟아진 1천300도의 쇳물'이 톱기사인 1970년 10월29일자 신문이 축소된 채 한 켠에 놓여 있다. 사무실에 들어찬 캐비닛, 철제 책상, 전화기 등 추억거리 일색이다. 3개의 인형은 각각 모르스 신호를보내고 망원경으로 바다를 관찰하는 등 바빠보인다.

이밖에 미군정당시 항로표지공무원 양성과정을 마쳤음을 증명하는 등대원 최선정씨의 수료증서, 1963~1985년 등대원 김용정씨의 봉급명세서, 인사발령통지서 등 등대원들의 다양한 흔적들을 모았다. 각각 내용과 종류는 다르지만 '한자'로 씌여진 것이 공통점. 한자 까막눈이 많은 요즘 젊은층이나 어린이가 보면 '대단하다'는 감탄사가 나올법도 하다.

전시관 바닥에 표시된 화살표를 따라 가다보면 운항체험관과 광파표지체험관에 이른다. 운항체험관은 모형 조종실에서 직접 운항해보는 곳이다. 자칫 난파할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광파표지체험관은 단추를 누르면 '빵~'하는 뱃고동 소리와 함께 모형 배가 타원을 그리며 움직인다. 빨강, 초록, 노랑, 흰색의 등대 불빛에 따라 어떻게 운항해야 안전하게 항구에 닿을 수 있는지 상세히 설명해주는 코너다.

제2전시관 해양수산관은 한국의 해상활동과 해양연구 모습을 압축해뒀다. 미국 범선, 통일신라시대 청해진 대사 장보고의 무역선, 울산의 아산로를 지나다보면 볼 수 있는 자동차를 실은 대형 선박, 해양탐사 활동을 하는 온누리호 등 대형 선박들이 늘어서 있기도 하고 부산 강서구 가덕도~경남 진해에 이르는 신항을 축소·전시해 뒀다. 일련의 해양산업 발달 모습을 통해 향후 발전될 모습을 상상해볼 수 있는 곳이다. 꼼치, 참다랑어, 불가사리, 조피볼락, 전어 등 생김이 제각각인 60~70여가지 해양 생물을 관찰하기에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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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미곶 광장=박물관 정문 맞은편에 '호미곶 해맞이 광장'이 있다. 호미곶은 옛날부터 일출이 뛰어나 삼국유사에는 삼국시대부터 해맞이 제천행사장으로 소개되어 있을 정도다. 해마다 12월31일 저녁부터 이듬해 1월1까지 이곳에서는 해맞이 행사가 치러진다. 2000년 새해를 맞는 행사때부터 해맞이 행사 상징물로 자리를 잡은 '상생의 손'은 관광객들의 사진속에 빠지지 않는 볼거리다. 광장내에는 왼손, 바닷가에는 오른손이 세워져 있는데 두 손이 서로 상극을 의미한다. 새천년을 맞아 국민이 서로 도우며 살자는 뜻에서 만들어진 조형물이다.
 또하나 빼놓지 말아야 할 것은 '전국 최대의 가마솥'. 덩그러니 광장 한켠을 지키고 있는 이것이 뭘까 의아하겠지만 31일 저녁이면 2만명이 먹을 수 있는 떡국을 끓여내 제 역할을 한다.

*금강산도 식후경
△호미곶 대게랑 아구랑 복어랑='포항'하면 '과메기'가 일품이긴 하지만 식사로 먹기에는 다소 부족함이 있다. 특히 겨울철 이곳은 바닷바람이 매서워 뜨끈한 국물이 절로 생각난다. 박물관 일대 식당에서는 대부분 매운탕이 국물거리지만 이곳에는 '해물탕'이 있어서 좋다. 조개, 문어, 새우 등 12가지 해물로 끓여낸 국물은 시원해 일품이고 양도 푸짐하다. 박물관에서 해맞이광장 방면으로 걸어서 5분. 3인기준 2만3천원. 054·284·3210.

유귀화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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