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된 폐교, 그 화려한 부활

'떠나버림'의 의미는 빈자리에 있다. 빈자리의 의미는 떠난 것이 무엇인가에 따라 달라진다. 사람이 떠나버린 풍경에는 생생한 현실이 남는다. 왁자하던 사람들로 인해 감추어졌던 현실 또는 사실은 아름다운 진실이 될 때가 많다. 물론 간혹은 더 큰 추함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감동과 실망의 갈림길이 분명해진다. 그게 '사람들이 떠나버린 풍경'의 묘미인지도 모른다.

학생이 떠나버린 학교는 의미가 없어야 한다. 폐교는 쓸쓸하다는 표현으로도 충분치 않다. 더없이 허술해보이고 허무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화산초등학교 가상분교는 아이들이 없어도 쓸쓸하지 않다. Cyan museum(시안미술관)이라는 멋진 이름으로 다시 태어난 폐교는 멋스럽다. 1999년에 폐교된 학교를 변숙희씨가 사들여 2004년 제1종미술관으로 꾸몄다.

시안미술관은 시골길을 따라 구불구불 들어가면서 멀찌감치서 한눈에 바라본 외관부터 미술관 다운 세련미를 드러냈다. 2층짜리 작은 학교를 리노베이션해서 3층으로 단장하고는 삼각지붕을 얹었다. 유럽식 주황색 삼각지붕이 눈길을 끈다. 지붕 위에 CYAN MUSEUM이라고 흰색 글씨가 솟아 있다. 지붕도 간판도 눈맛을 거스르지 않고 자연과 어우러진다. 그래서 편안하다.

문도 달리지 않은 입구로 들어서자 잔디운동장(6천평)이다. 아이들의 재잘거림 대신에 조각작품들이 제자리를 잡고 있다. 건물형태는 일자형 교사 그대로다. 외벽을 유리로 새단장하고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과 테라스를 나무로 만들어 푸근함을 더했다. 1층엔 4개의 전시장 가운데 가장 큰 1전시장이 있다. 1층 벽면은 전부 유리문이다. 지금 전시회는 없다. 2층은 카페다. 음악도 좋고 커피맛도 좋다. 창너머로 멀리 보이는 풍경들은 소박하다. 야트막한 산들이 미술관과 마을을 포근히 감싸고 있다. 2층에도 작은 전시장이 있고 3층에 다시 큰 전시장이 있다.

변숙희 관장은 "봄빛이 돋아나는 3월이면 주변이 너무 아름답다"고, "좋은 전시회도 있을테니 꼭 다시 오라"고 당부했다.

정월초하루도, 대보름도 지난 다음에 찾아가는 절집은 애초에 조용할 터였다. 팔공산 동쪽 기슭에 자리한 은해사(銀海寺)의 말사인 거조암(居祖庵·영천시 청통면 신원리)은 그 고요를 오롯히 품고 있었다. 마치 마음 속에 오래전부터 품고 있었던 절집 같았다. 상투적인 절집과는 사뭇 달랐다.

마을을 지나, 저수지를 지나 멀리서 바라본 절집은 네 채의 건물지붕만 보였다. 입구인 종루를 지날 때만 해도 그저 그런 절이거니 했다. 그런데 절집 마당으로 들어섰을 때는 고요함과 그윽함에 마음이 차분해졌다. 말소리도 절로 조용조용해졌다. 절집 근처에서부터 투명해진 바람의 맛은 더욱 청량해졌다.

대웅전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영산전(靈山殿·국보 제14호)은 한참을 바라보고 싶을 만큼 정갈했다. 단정한 맞배지붕, 단청하나 없이 흙벽에 나무기둥만 선명한 서까래와 벽. 문도 앞쪽에 단 하나다. 흔히 법당엔 옆문으로 들어가야 한다는데 어쩌지…하면서, 그러고도 한참을 건물만 바라보고 있었다. 볼수록 깨끗하게 한복을 차려입은 학덕 높은 선비같았다. 영산전 앞에 자리한 3.6m 높이의 조그만 삼층석탑도 정겹다.

영산전 옆 담장이 길게 놓여지고 그 담장의 중간을 잘라 세워놓은 작은 산신각은 절집의 분위기를 돋운다. 산신각 안은 사람은 물론이고 방석 한 장도 놓을 수 없는 작은 공간이다. 탱화와 향불, 목탁이 짜임새 있게 들어앉아 있다. 현란하지는 않지만 곱게 단청을 했다.

영산전 안으로 들어서면 감탄사는 더 커진다. 50~60㎝정도 크기의 석조나한상 526기가 법계도(法界圖)를 따라 방안을 빙둘러 두 줄로 서 있다. 석고처럼 하얀칠을 한 나한들은 표정과 동작이 모두 다르다. 기괴한 용모도 있고 익살스런 얼굴도 있다. 나한(羅漢)이란 아라한(阿羅漢)의 준말로서 본래 세속잡인에 불과했으나 불타의 설법에 감복하여 인생의 진실을 깨닫고 오도성불(梧道成佛)한 불제자들을 말한다.

거조암은 고려시대 절집이다. 693년(효소왕 2)에 원효가 창건했다는 설, 경덕왕(742~764) 때 왕명으로 창건했다는 설, 738년(효성왕 2)에 원참스님이 창건했다는 설 등이 있다.

▶ 찾아 가는 길

◇시안미술관=경부고속도로를 따라 1시간여 가면 영천톨게이트에 닿는다. 톨게이트 인근이 공사중이라 복잡하다. 표지판을 살펴 시외버스터미널 방향으로 가야 한다. 서문오거리를 지나 S-OiL 삼부주유소를 확인한 후 우회전하면 시안미술관 방향이다. 새도로를 놓는지, 높다랗게 다릿발이 서 있다. 그 길로 곧장 6㎞가량 들어가야 한다. 영천시 화산면 가산리. 054·338·9391.

◇거조암=시안미술관에서 나와 국도를 따라 우회전, 화산면사무소를 거쳐 신녕역을 지나면 곧바로 SK주유소 맞은편에 거조암 이정표가 보인다. 여기서 좌회전해서 10여분 차로 이동하면 거조암에 이른다. 또 청통면 쪽으로 가도 된다. 청통네거리에서 은해사와 거조암을 알리는 표지판을 볼 수 있다. 오른쪽으로 10여분 가면 거조암에 이른다. 영천IC에서 25분 거리. 영천시 청통면 신원리. 054·335·1369

▶ 주변볼거리

◇영천시장=울산사람들은 영천에 대해 이상하게 이야깃거리를 많이 갖고 있다. 거개 규모가 큰 닷새장에서 기인한 말들이다. 구하기 힘든 무언가를 찾으면 '영천자아(장) 가서 알아봐라'라고 말한다. 영천장에 가면 없는 게 없다는 말이다. 영천장은 영남 3대시장 중의 하나로 꼽히는 큰 장터다. 소위 요즘 유행하는 아케이드라는 것이 만들어지고 점포도 반듯하게 자리를 잡고 있어 닷새장 특유의 질펀한 멋은 별로 없다. 시외버스터미널 바로 옆에 있다. 장날은 2일과 7일.

◇사일온천=영천에 생긴 온천이다. 사일초등학교에서 산쪽으로 10여분 들어가면 된다. 온천물이 좋고, 노천온천도 있다. 영천시내에서 20분거리. 054·332·4141.

▶ 먹거리

◇영양숯불갈비=영천톨게이트를 들어서자말자 좌회전해서 다시 잠깐 가면 왼편에 숯불고기단지라는 간판이 서 있다. 이 곳에 있는 여러 고기집 가운데 하나다. 갈비살만 취급한다. 손님들이 보는데서 갈비살을 다듬고 있다. 메뉴는 갈비살 생고기와 양념 두가지 뿐이다. 150g 1인분에 1만6천원이다. 영천시 도남동. 054·331·1588.

글·사진=정명숙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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