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수유·매화·목련 꽃 피울 채비 갖춰, 강바람 따뜻한 강변 재첩껍데기 지천배밭·차밭 이어지는 드라이브길 장관

섬진강을 다녀왔다. 봄이지만 꽃이 흐드러지기에는 좀 일렀다. 만개한 꽃을 보지 못해 아쉽기는 했으나 번잡하지 않아 좋았다. 산수유, 매화, 목련, 벚꽃 등 가지마다 망울망울 봉오리가 맺혔다. 열흘 또는 보름 뒤의 장관을 미리 상상하는 것도 설렘이었다.

봄볕에 물 오른 자연 그대로의 풍경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80리 강 줄기를 천천히 거슬러 오르고 하룻밤 묵은 뒤 건너 편을 다시 훑어 내려 오는 일정 동안 섬진강은 어느새 '봄 내내 하염없이 머물고픈 곳'으로 마음 깊숙이 자리잡았다.

하동읍 어느 곳에라도 둑방에 오르면 유장한 섬진강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남쪽에서 부는 강바람이 보드랍다. 가슴까지 오는 고무장화를 신고 재첩이나 참게를 잡는 모습을 볼 수 없어 아쉬워했더니 나물 파는 할머니는 "아직 때가 이르다"고 알려준다.

태화강을 앞마당처럼 끼고 사는 지라 멀찍이서 바라보기만 하는 도심 속 하천에 익숙해 있는 아이들은 강가 모래톱에 '풀어놓았더니' 마냥 개구쟁이다.

멋모르고 뻘 속에 디딘 한 쪽 발을 빼다가 오히려 두 발 다 움푹 빠져들었다. 종래는 두 손과 엉덩이까지 걸쭉한 진흙을 묻혀 울상을 짓는다. 어느 강변은 바스락 소리가 경쾌한 자갈밭 같다. 새끼손톱만한 알갱이들이 자세히보니 전부 재첩 껍데기다. 하얀 모래톱이 강물이 흐르는 곳보다 몇 곱절 더 넓은 곳도 많다. 조개껍질과 모래가 많으니 아이들이 바다에 온 것 같다고 말한다. 바위 위에 올라 봄볕을 쬐는 자라를 보고도 끝까지 바다에 사는 거북이라 우긴다.

운 좋게도 목 둘레가 하얀 독수리가 고기를 뜯는 모습도 지켜볼 수 있었다. 휘어진 부리가 어른 손 길이만큼은 될 성 싶다. "옛날에…, 말 안듣는 아이를 저 독수리가 채 갔다지…" "그래. 우리 동네에도 있었어. 아이 등짝을 이렇게 움켜쥐고 말이야…." 아이들이 금세 뜨악해진 얼굴이다.

드라이브 길은 마치 큰 과수원을 지나는 것 같다. 도로 옆으로 아치형 배 줄기가 끝도 없다. 여기저기 버팀대에 줄기를 갖다 붙이는 농부들의 손이 바쁘다. 밭둑에 정겹게 앉아 나물을 캐는 아낙들이 봄 기운을 타고 아른거린다. 배밭이 끝나는가 했더니 이번엔 차밭이 이어진다. 키가 작고 억센 잎이 아직 많은 듯. 하지만 산등성이까지 계단처럼 차고 앉은 모습이 봄볕 아래 소담스럽다.

# 광양 청매실농원

하동읍 건너편 섬진강 남쪽은 여러 개인 매실농원들이 강변을 따라 수십킬로미터 이어진다. '섬진마을'(광양시 다압면)이라는 본래 이름보다 '매실마을'로 더 잘 알려진 이유다. 섬진강을 찾는 이들이 정규 관광코스처럼 다녀가는 청매실농원이 가장 유명하다. 매실나무에는 몽우리만 가득 달려있다. 때이른 손님들을 위해 오르막 길가를 따라 장독을 세우고 그 위에 갖가지 꽃길을 꾸며 놓았다. 쉼터에서 장아찌와 잼 등을 팔던 농원주인 홍쌍리씨는 "올해는 유달리 봄이 일찍 찾아와 이 달 23~30일이면 10만여 그루의 매화나무가 일제히 꽃망울을 터트릴 것 같다"고 전한다. 농원의 또다른 볼거리는 장독대다. 무려 2천여 기의 장독이 놓여있는데 수확한 매실을 모두 전통 옹기에서 숙성한단다. 장독대 너머 섬진강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이들이 많다.

# 구례 산수유마을

지리산 온천지구를 지나 지리산 만복대 아래 상위마을이 바로 산수유마을이다. 드문드문 농가만 몇 채씩 이어질 뿐 알림판도 없고 노란 꽃도 없다. 꽃망울들이 노란 속살을 조금 내보이고 있을 뿐 이곳 역시 꽃이 피려면 열흘은 더 지나야 한단다. 한번 핀 꽃무더기가 한 달 이상 지속된다고 한다.

홍보용 인쇄물에서 익히 보아왔던 초가지붕을 찾았지만 그런 곳은 없었다. 마을 사람들은 "지붕은 개량된지 오래됐다"면서 "돌담이나 개울 옆 산수유 그늘은 그대로이니 마을을 이리저리 걸어 다녀보면 옛 정취는 그대로"라고 알려준다.

**찾아가는 길

울산 무거동에서 경부고속도로~남해고속도로를 거쳐 하동IC까지는 190km. 지체 구간이 없다면 2시간 30여분 소요. 하동IC에서 구례방향으로 강 북쪽 19번 국도를 따라 직진한다. 소설 '토지'의 배경이 된 악양들판과 최참판댁, 화개장터, 쌍계사, 노고단, 온천지구 등을 알리는 알림판이 차례로 나온다.

**숙 박 지

반대로 구례군청 앞 오거리에서 광양 및 순천 방향으로 내려오려면 섬진강 남쪽 861번 지방도를 이용한다. 사성암과 매화마을은 이 도로와 인접해 있다. 모래사장으로 연결되는 통로가 드문드문 이어지는 19번 국도와는 달리 절벽인 곳이 많아 강가로 내려서기가 쉽지않다.

**음 식 점

지리산온천호텔 및 가족호텔 등 온천지구 내 숙박시설을 이용하면 온천수를 무료로 이용할 수있다. 다음주까지는 숙박료 할인 기간이라 평소보다 30% 저렴하다. 숙박비는 4인 가족 3만~10만원 선.

**주변 볼거리

△고향산천 = 온천지구 내 지리산온천호텔 1층에 있다. 비빔밥, 찌개류 등 5천~1만원선 10여가지 메뉴가 다양하다. 이 고장 토박이 주인장에게 산수유마을이나 등반길을 물으면 친절히 알려준다. 061·783·9111

△원조신방재첩식당 =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섬진강으로 들어선 뒤 처음 만나는 나루터에 있다. 재첩국(7천원), 재첩비빕밥(8천원), 참게탕(2만~3만원)등을 먹을 수 있다. 택배나 포장도 가능하다. 055·882·3745

△사성암 = 비교적 최근에 많이 알려진 백제 고찰이다. 드라마 '토지'에서 노년의 길상이가 잠시 몸을 숨겼던 절이다. 아기자기한 돌담과 돌계단, 바위에 새겨진 마애여래상을 모신 본당, 한 사람 겨우 지나치는 바위굴 등 비좁은 공간이지만 볼거리가 생각 외로 많다. 곡성에서 구례, 다시 하동으로 굽이지는 강줄기를 한 눈에 더듬어 살필 수 있는 것은 예상치 못한 즐거움이다.

나즈막한 오산(540m) 이마에 있지만 아이가 있거나 시간이 빠듯하다면 차를 타고 오르는 것이 낫다. 포장길이지만 꽤 가파른 코스라 걸어서 한시간여는 족히 걸린다. 초보운전자는 위험운전을 감수해야 한다. 도로 아래에서 암자까지 운행하는 승합차 이용료는 2천원.

글·사진=홍영진 주부리포터[email protected]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