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가지 전통술·떡 우리 맛·멋·흥에 흠뻑
이름도 휘귀한 '예술품' 곳곳서 탄성 절로
떡메치기·화전만들기 등 체험행사도 다채

이름만 꼽아도 마음 넉넉해지는 음식축제가 사철 질퍽하게 열린다. 빙어축제와 멸치축제, 주꾸미축제, 전어축제, 젓갈축제에다 인삼축제, 송이축제, 콩축제, 쌀축제, 김치축제가 제마금 맵시를 뽐낸다. 거기에 천년고도 경주에서 열리는 '한국의 술과 떡잔치'도 빠뜨릴 순 없다.

연초록 색깔이 산천을 물들이는 사월 경주는 바로 꽃대궐이다. 곳곳에서 큰 폭발음이 울린다. 펑펑 꽃들이 터뜨리는 환상의 폭음이 메아리로 남는다. 그렇게도 연분홍 물결로 넘실대던 벚꽃이 눈발 휘날리듯 떨어지는 지난 4월15일부터 20일까지 엿새동안 '2006 경주 한국의 술과 떡잔치'가 열렸다. 행사장은 솔내음 진하게 풍기는 유서 깊은 황성공원. '세계 속의 우리의 맛, 멋, 그리고 흥!'이란 주제로 6개 부문 40여가지 프로그램이 펼쳐졌다.

우리 민족의 대표적 의례음식이 떡이다. 떡에는 우리네 삶의 속살이 짙게 배어 있다. 하루 세끼 때우기가 어려웠던 시절에도 떡을 하게 되면 몇 토막씩이라도 이웃에 돌리곤 했다. 떡은 우리 겨레에게 정감과 나눔의 증표였다. 떡의 역사는 부족국가 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때 곡물이 생산됐고 이 시기 매장유물 중에 떡 제작에 쓰였던 갈돌과 갈판, 시루 등도 출토됐다.

우리 선조들이 술을 아끼고 사랑한 마음은 참으로 극진했다. '술 한 잔에 시 한 수'라는 말이 있듯 풍류가 있는 곳에는 술이 있었고, 술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주도(酒道)가 따랐다. 선조들은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계영배(戒盈杯)의 정신을 되새기곤 했다. 떡 역사와 마찬가지로 삼국시대 이전부터 술을 빚어왔고, 그 기술을 일본에 전수까지 했다. 일본이 자랑하는 청주의 원조는 바로 우리 것이다.

'경주 한국 술과 떡잔치'는 축제의 5대 요소 가운데 하나인 볼거리, 즉 우리의 술과 떡을 보는 것이 핵심. 하지만 관객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그것만으로는 부족할 터. 그래서 공연과 체험, 특별, 부대행사 등의 프로그램으로 흥미를 돋구었다.

주행사는 전통떡과 술로 꾸며졌다. 전시장을 채운 이름 만큼이나 아름다운 모양으로 만들어진 형형색색의 떡. 조금은 부풀려 말하면 어찌 사람 손으로 빚은 것이라 할 수 있을까. 전시장 곳곳에서 관객들의 탄성이 절로 일곤 했다. 그 이름도 희귀한 '범떡'에다 '석탄병', '상애떡', '삼색산승', '율고' 등등은 그 모두가 바로 예술품이었다.

떡을 잘 먹지 않는 젊은층을 겨낭한 듯 '메론떡'과 '딸기떡', '치즈떡', '와인떡', '카레떡'은 눈길을 사로잡기에 결코 모자람이 없었다. 또 웰빙을 염두에 둔 '숯떡'과 '홍삼떡', '단호박편', '고구마편'도 인기였다. 올해 처음 치러진 '제1회 대한민국 창작떡 만들기 대회'에서 뽑힌 떡 가운데 9점도 전시돼 떡 제작의 새로운 시도를 엿볼 수 있게 했다.

전통술로는 경주 교동법주와 전주 이강주, 안동소주, 한산 소곡주, 계룡 백일주, 금산 인삼주, 지리산 솔송주, 추성 추성주 등이 전시됐다. 그리고 술과 떡을 만들 때 쓰였던 소줏고리와 떡메, 떡살, 시루 등 갖가지 도구도 전시돼 조상들의 숨결을 진하게 느낄 수 있게 했다.

가장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민속마을인 안강 양동마을 손씨종가에서 치러지는 '통과의례 상차림'. 태어나 죽을 때까지 일생동안 치르게 마련인 상차림-삼신상과 백일상, 돌상, 관례상, 혼례상, 회갑상, 제례상-을 차례대로 꾸며놓아 교육효과까지를 높였다.

즐길거리도 여럿 마련됐다. 떡메치기는 가족끼리 참여하는 '우리가족 떡메치기'와 개별적으로 참여하는 '으랏차차 떡메치기'로 나눠 진행됐으며, 직접 화전을 만들어 보는 '떡따라 만들기' 프로그램도 인기를 모았다. 이밖에도 떡살탁본과 한지체험 등 10여가지가 넘는 체험행사도 이어졌다.

올해 첫 선을 보인 것으로 사적 제1호 '포석정'을 축소 제작해서 진행요원들이 왕과 신하로 분장하고 관객들도 참가해서 잔치판을 벌이게 했다. 또 전통과 현대를 버무린 삐에로가 출연한 '암행어사 출도'란 프로그램과 '월드컵 도전 4강을 쏴라!'는 프로그램도 마련하는 등 젊은 관객을 불러모으기 위한 새로운 프로그램 개발에도 힘쓴 모습이었다.

시음·시식과 판매를 겸한 술과 떡판매 부스도 성황을 이뤘다. 올해는 경주시의 외국 자매도시 일본 나라시와 중국 서안시, 그리고 국내에서는 전북 익산시가 참가했다. 전통떡과 술에 어울리는 민속공예품과 도자기축제장도 축제의 의미를 높였다.

하지만 '한국의 술과 떡잔치'가 천년고도 경주의 관광상품으로 더욱 기능하기 위해서는 국내의 대표적인 떡을 지역별로, 시절별로 분류하고 서너 가지만이라도 만드는 전 과정을 직접 보여주는 프로그램이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주프로그램이 튼튼하지 않고는 축제는 성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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