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대 노부부가 이웃에 산다. 농사만 짓고 살아온 그들은 생각컨대 사랑의 밀어라고는 한번도 내뱉어 본 적이 없을 것 같다. 멀쩡한 신식 변기를 집 안에 두고도 밥 먹다가 허리춤을 부여잡고 대문 밖 재래 화장실로 뛰어가는 노부부를 지켜보노라면 도무지 상상이 안간다. 게다가 두 노인네 모두 무뚝뚝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성격이니 더욱 그렇다.

할머니가 들꽃이 가득 담긴 화분에 물을 주고 있었다. 푸성귀에 지나지 않는 것에 조심조심 물을 붓는 할머니 얼굴이 환했다. 인기척에 돌아보던 할머니가 혼잣말처럼 중얼중얼했다. "오줄없는 영감쟁이. 오매가매 보라고 또 심어 놓네. 작년카마 영 못하구마는…" 은근슬쩍 흘리는 말이 흉 보는 게 아니라 한참 어린 나를 붙잡고 자랑을 하신게다.

한평생 같이 산 부부란 저런건가? 말없이 건네는 보잘 것 없는 것 하나에도 저만큼 행복이 샘솟게 될까? 찌르르 전율이 흘렀다.

21일은 둘(2)이 합쳐 하나(1)가 된다는 부부의 날이다.

어느 설문조사에서 남편들은 "난 당신을 믿어요"라는 말을 가장 좋아한다나. "나, 당신 믿는거 알죠?" 지난 밤 슬며시 건넸다. 아내가 제일 듣고 싶어라 하는 "당신 많이 힘들지?"까지는 아니더래도 '피식~'하는 엷은 미소 쯤은 되돌아 올 줄 알고 미리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누가 경상도 사나이 아니랄까봐. "니 또 오늘 뭐 샀나? 함 보자 "하고 딴청을 부린다. 덩치에 안 어울리게 부끄럼이 많은 남자라는 걸 짐작하면서도 섭섭해진다.

이심전심이 통하려면 아직 연륜이 부족한가. 어떻게, 얼마나 더 살아야 노부부처럼 바라지 않고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며 살게 될까. 정답을 아는 이가 있기는 있는 걸까.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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