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 우거진 문복산 '보기드문 계곡' 절경 품어
세속오계 닦던 신라 화랑들 풍류 고스란히

여름 땡볕이 뜨거워질수록 숲은 우거져 등산객들에게 그늘을 제공한다. 등산객들을 위한 자연의 배려라고 해석하면 아전인수격일까.

서늘하게 침잠한 계곡 속에는 더위를 피해 나온 생명들의 두런거림이 요란하다. 사람도, 동물도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듯 깊은 곳 물을 찾아 몰려간다.

문복산(1013.5m)은 영남알프스의 산군이면서도 백두대간 낙동정맥에서 약간 벗어났지만 그 높고 깊은 능선과 계곡으로 낙동정맥의 푸른 정기를 떠받치고 있다.

등산은 낙동정맥과 문복산은 칼처럼 자르고 지나간 운문재 고갯마루에서 시작한다.

운문재 적당한 곳에 차를 주차시키고 북쪽 산기슭을 향해 몇 발걸음을 떼면 벌써 능선이다. 문복산 정상을 향한 능선은 중년의 늙수그레한 여우처럼 원만하다.

북쪽을 향해 길게 뻗은 능선은 지루하지 않을 만큼 굴곡을 주면서 등산객들을 안내한다. 때로는 미끄럼을 타듯이 내리막을 걷다가 때로는 하늘을 찌를듯 솟은 봉우리를 공격하기를 몇 번, 어느새 오른쪽에는 경주 산내가 한 눈에 들어온다.

오른쪽 발아래 산내면을 내려다 보다 얼굴을 들면 고헌산이 흐릿한 산너울을 펼치며 북쪽으로 아득한 선을 긋고 있다. 고헌산에서 단석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문복산 능선을 마주하며 인사를 하듯 나란히 북쪽으로 걸어간다.

이렇듯 고헌산과 문복산은 산내면을 중심으로 양 옆에서 북쪽으로 평행선을 긋고 있지만 고헌산 능선은 가지산으로 이어지는 낙동정맥이요 문복산 능선은 영남알프스의 산군 중 하나에 지나지 않아 어찌보면 차별이 섭섭하기까지 하다.

문복산 정상으로 향한 능선은 중간쯤에서 한 번 방향을 서쪽으로 심하게 틀어 등산객들의 발걸음을 재촉한다. 마지막 정상을 향한 숨가쁜 오르막은 어디를 가나 있게 마련. 문복산 정상은 특별한 인상을 주지는 않지만 긴 능선의 끝에서 '이제부터 보기드문 계곡을 보여주겠다'는듯 이정표처럼 우뚝 서 있다.

정상에서 다시 돌아나와 돌탑에서 서쪽으로 방향을 틀면 이제는 개살피 계곡으로 향하는 즐거운 발걸음이다. 계곡으로 쏟아지는 내리막길에 물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 소풍나온 아이들 마냥 들뜬 마음을 어찌할 수 없다.

개살피 계곡은 '가슬(개살)갑사' 옆(피)의 계곡이라는 경상도 방언에서 유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슬갑사'는 원광법사가 세속오계를 화랑들에게 내려준 곳으로, 화랑들은 이 문복산 기슭 계곡에서 심신을 연마하며 원광법사가 내려준 세속오계를 닦았다고 전해온다.

계곡을 내려오다 보면 가슬갑사 표지석이 길가에 세워져 있다. 그러나 이 표지석이 정확하게 가슬갑사 터인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계곡은 이러한 깊은 내력을 입증이라도 하듯 웅장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청량한 물소리는 양쪽으로 병풍처럼 늘어선 산림에 메아리로 맞부딪치며 화음을 낸다. 계곡에 만들어진 소와 작은 폭포들은 눈과 귀를 즐겁게 하고, 투명한 계곡수는 맨발을 타고 온 몸을 짜릿하게 전율시킨다.

계곡의 끝은 삼계리로 나 있다.

삼계리는 개살피 계곡과 생금비리 계곡, 쌍계계곡 등 3개의 계곡이 합쳐지는 곳이라 해서 붙여진 지명이다.

개살피는 이들 3개 계곡 중에서도 그 계곡미가 으뜸이다.

소와 폭포, 그리고 푸른 산빛과 새소리, 바람소리….

계곡에 가득한 푸른 공기를 폐부 깊숙이 들이마시면 등산객의 몸은 자연과 하나가 된다.

글·사진=산유회(www.iphotopi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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