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지 제작과정 실물크기 인형이 재현 '눈길'
'인쇄의 시초' 천전리암각화 한쪽 벽면 장식
전시실 돌아본 후 금속활자본 인쇄체험 가능

"이곳에도 천전리암각화가 있어?"

박물관 내 벽면 한 켠에 큼직하게 그려져 있는 천전리암각화 모형을 보니 뿌듯하다.

울산에서 4~5시간 열심히 운전해야 겨우 도착하는 멀고 낯선 땅에서 울산 사람에게 익숙한 천전리암각화를 만난 이곳은 충북 청주 고인쇄박물관이다.

천전리암각화 관련 전시물이 있는 이유는 벽에 그림이나 문자를 새기는 것이 인쇄의 시초라고 보고 실존하는 것을 소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인쇄박물관 외관은 소담스럽다. 지붕은 진흙으로 곱게 빚어 초벌구이한 도자 접시 6개를 뒤집어 둔 형상이고 그 아래 여섯 개의 둥근 건물이 잘 이어져 있다.

외형 벽면 가운데는 한자가 새겨진 네모 반듯한 동판들이 줄지어 장식돼 있다. '직지'에 있는 내용 일부를 그대로 옮겨놓은 모양인데 마치 건물이 허리띠를 한 것 같다.

우리나라의 인쇄술 역사를 한 눈에 읽을 수 있도록 꾸며진 고인쇄박물관의 주요 테마는 바로 '직지(直指)'. 468평 규모의 실내 전시장에 1천100여점의 직지와 인쇄술 관련 유물을 모았다.

실내에 들어서면 직지를 소개하는 전시물들과 만난다.

전시실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 인쇄본인 직지의 복사본과 직지가 만들어졌던 장소인 흥덕사의 발굴 당시 유물을 모아뒀다. 또 직지의 제작과정을 움직이고 말까지 하는 실물 크기의 인형으로 재현했다.

그러나 자료에 대한 기대를 너무 크게 갖지는 말자. 직지의 원본이 프랑스국립도서관에 소장돼 있기 때문에 복사본인 직지 영인본을 보는 데 만족해야한다.

또 지난 1985년 택지개발사업 당시 직지가 인쇄된 장소인 흥덕사 터에서 발굴된 유물 역시 복사본을 봐야한다. 원본은 국립청주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하지만 자료실을 지나 직지 제작과정 전시실은 기대를 갖고 봐도 손색이 없다.

'글자본 정하기' '밀납 정제하기' '밀납자 말들기' '금속활자 만들기' '조판하기' '인쇄 및 교정보기' '책 꿰메기' 등 직지를 만드는 전 과정을 사람 실물 크기의 인형이 움직이고 친절하게 설명한다.

최근 국내 대부분의 박물관들이 인형을 전시에 도입해 관람객들의 흥미를 끌고 있지만 사람 실물 크기의 인형이 움직이고 말까지 하는 점은 이곳에서나 볼 수 있는 신선함이다.

얼굴에 주름이 자글자글, 후덕해보이는 스님 인형이 "밀납은 벌꿀을 넣어서 만들지" "조판에 맞춰 글자를 파는 과정이지"하는 등의 설명을 할 때면 신기하기도 하다.

특히나 재미난 것은 직지가 만들어질 조선시대에도 틀린 글자는 빨간 색으로 동그랗게 칠해 돼지꼬리표 형식을 해뒀다는 점. '인쇄 및 교정보기'코너에 있는 교정지를 보면 확인할 수 있다.

직지에 대한 자료실을 돌아나오면 우리 나라 인쇄문화와 역사에 관한 자료들이 준비돼 있다.

제일 처음 맞딱드리는 게 천전리암각화 그림본. 한 쪽 벽면에 큼직하게 그려져 있다. 또 한 쪽에는 벽에 뭔가를 새기고 있는 원시인형이 있다. 암각화 새기는 과정을 재현해 둔 곳이다.

이밖에도 최초의 한글 활자 '월인천강지곡', 세계 최고의 목판인쇄물이라 일컬어지는 '무구정광대다라니경',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 등 학창시절 국어 교과서에서 사진으로 보고 외웠던 인쇄 관련 문화유물 복사본들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나라 고인쇄물에는 오·탈자 없이 정교한 것으로 유명하다.

조선시대에는 인쇄소 근무 직원이 한 권 안에 한 자의 먹 농도가 다른 것보다 진하거나 희미할 때 곤장 30대를, 한 자가 더 틀릴 때는 배로 맞도록 되어 있었다.

또 관의 직원이 그 이상 틀릴 시에는 파직되고 기술직의 경우는 매를 맞은 뒤 50일 동안 근무를 할 수 없도록 했다는 기록을 이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재미있어서 웃게 되지만 선조들의 꼼꼼함과 그런 엄격함이 결국은 세계가 인정하는 우수한 인쇄기술을 가졌던 이유였음을 알게되는 순간이다.

국내 인쇄문화와 역사 전시실을 돌아보고 나오면서 세계 금속 인쇄술의 최고 걸작으로 통하는 구텐베르크의 42행 성서 영인본을 둘러보고 또 직지 금속활자본 복사본에 먹을 발라 직접 인쇄 체험을 해보는 것도 이곳 박물관을 백배 즐기는 방법이다.

#어떻게 갈까

울산IC에서 서울방면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가다가 남외분기점에서 우측으로 난 중앙고속도로를 갈아타면 된다. 서청주IC에서 계속 직진하면 찾을 수 있기 때문에 이곳으로 빠져나오면 된다. 여유 있게 도착하는 데 4시간 30분가량 걸린다.

#박물관 관람 시간

오전 9시~오후 6시 문을 연다. 입장은 오후 5시까지만 가능하다. 매주 월요일과 1월1일, 설·추석에는 문을 닫는다. 관람료는 400원~600원이다. 043·269·0556.

#주변 볼거리

△ 초정약수촌=세계 광천학계에서는 초정약수를 세계 3대 광천의 하나로 꼽는 천연탄산수인 초정약수로 온천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이 일대에 숙박시설 및 온천시설이 밀집해 있다. 초정약수는 청주의 자랑이기도 한데 물이 꼭 사이다처럼 톡톡 쏜다. 초정약수를 마시면 그냥 물을 먹는 것인데 마치 탄산음료를 마시는 느낌이 들어서 신기하다.

'동국여지승람'과 '조선왕조실록' 등에 세종대왕이 이곳에 60일 동안 머물며 눈병을 고쳤고 세조도 이 약수로 심한 피부병을 고쳤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박물관에서 충주쪽 표지판을 따라 20분 가량 가면 찾을 수 있다. 표지판이 있어 찾기 쉽다.

△ 청남대=대통령 별장이다. 지난 1983년 12월에 영춘재란 이름으로 만들어졌던 이곳은 1987년에 따뜻한 남쪽의 청와대란 뜻에서 '청남대'로 이름을 바꾸었다. 20여년간 베일속에 가려졌던 청남대는 노무현 대통령에 의해 2003년 4월 일반에게 개방됐다.

숲속에 있는 정자, 장미 1천200본이 가득한 정원, 비단잉어 붕어 향어 등이 가득한 양어장 등등 멋진 조경을 자랑한다. 서청주IC에서 울산으로 내려오는 길에 청원IC로 나가면 찾을 수 있다. 서청주IC에서 20~30분 가량 걸린다.043·220·5673.

글·사진=유귀화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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