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18번째 산골축제에 '경이'
낮에는 마임으로 소통하고
밤엔 연극관람 '이색 휴가'
수승대 빼어난 정취도 만끽
큰틀 유지 인프라 확충 필요

국내에서도 현대예술을 주제로 한 축제에 일반인들이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문화의 다양성을 생각할 때 그만큼 다행한 일도 없다. 그동안 축제라면 전통문화를 내세운 것으로만 여겨온 게 사실이었고, 그래서 축제에 대한 인식의 한계를 허무는 일에 많은 이들이 매달려왔다. 그런 고단하고도 소중한 작업의 결과로 이제 현대예술이 지평을 넓혀 축제로서의 새로운 도약을 하고 있다. 바로 지역 브랜드 이미지를 높임은 물론 관광상품으로서의 부가가치까지 창출하고 있는 것이다.

여느 축제에 못잖게 명성이 드높은 춘천국제마임축제와 평창효석문화제, 부산국제영화제, 통영국제음악제,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이 일반인에게도 폭발적인 인기를 모으고 있는 것이 여실히 증명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 대표적인 현대예술축제의 하나가 바로 야외연극축제인 거창국제연극제이다. 최근 전국 곳곳에서 야외연극축제가 붐을 이루고 있는 것을 보면서 열악한 시절에, 그것도 인구 7만의 산골 거창에서 국제연극축제를 만든 것에 경이로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올해 '제18회 거창국제연극제(KIFT)'는 지난 7월 28일부터 이달 16일까지 20일동안 경남 거창군 위천면 황산리에 있는 국민관광지 수승대 일원에서 열렸다. '내 안의 열정, 세상을 담아오다'란 주제 아래 실험극과 마당극, 뮤지컬, 발레, 전통예술 등 다양한 장르의 공연이 주행사로 펼쳐졌다. 국외공식초청작품과 국외기획작품, 국내공식초청작품, 국내경연참가작품으로 나눠 공연되고 부대행사도 마련된 것이다.

국외공식초청작품으로 루마니아의 '러브 인 베니스'와 프랑스의 '탄생', 일본의 '에비대왕' 등 5개 작품이, 국외기획작품으로는 독일의 '사람이 되고 싶어'와 에콰도르의 '인디안 스피릿' 등 역시 5개 작품이 공연됐다. 국내공식초청작은 극단 '춘추'의 '막차 탄 동기동창'과 극단 '제의와 놀이'의 '애랑야곡', 극단 '울산'의 '귀신고래회유해면', 극단 '가람'의 '빨간피터' 등 20개 작품이 선을 보였다. 지난 2002년부터 시작된 국내경연참가작품으로는 58개 작품 가운데 엄선된 18개 작품이 무대에 올라 열띤 경연을 펼친 결과 대상에 극단 '수'의 '이름을 찾습니다'가 뽑혔다.

거창국제연극제가 돋보이는 것은 한여름밤 자연 속의 무대에서 열리는 점이다. 축제에서 장소의 중요성이 축제성패의 열쇠라는 점을 절실히 인식하게 했다. 수승대라는 장소의 절묘함과 빼어남에서부터 관객들은 축제에 쉽게 동화될 수 밖에 없었다. 물이 넉넉한 계곡과 곳곳의 너럭바위와 거북바위, 옛 서원, 그리고 대나무 숲과 울창한 솔밭, 500년 된 은행나무, 허름한 정자, 구름다리 등등의 자연 그대로의 신선한 배경에서부터 관객들은 마음을 열게 마련이다.

이는 공연장 구성에서 확연하게 느낄 수 있다. 기존 야외공연장인 축제극장(주극장)과 돌담극장 외에 수승대 경내의 구연서원(龜淵書院)과 500년 된 은행나무, 감나무밭, 구름다리 등의 시설물에다 '거북극장'과 '은행나무극장' '감나무극장' '무지개극장'이란 자연친화적인 이름을 붙여 관객에게 친근감을 주어 손쉽게 접근하게 했다.

한여름에 열리는 점을 고려해서 공연시각을 짠 것도 눈 여겨 볼 대목. 한낮에는 계곡물에서 더위를 식히고 밤에 연극을 감상할 수 있게 시간을 짰다. 주극장인 축제극장에 올려지는 작품은 밤 9시30분에 공연을 시작하고, 거북극장과 돌담, 감나무극장에서는 밤 8시에 공연했다. 그렇다고 낮에 공연을 열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낮에는 쉽게 소통할 수 있는 마임이라든가 무용극, 길거리극을 펼쳤는가 하면 수상무대를 만들어 물놀이를 하면서도 볼 수 있는 공연도 마련했다. 아울러 지역주민들을 위해 거창읍내 주요 지점에서 길거리 공연도 가져 지역민과 함께 하는 축제가 되게 했다.

부대행사로 열린 '세계초연 희곡공모'와 '무대디자인 응모전' 'KIFT평론전'도 주목을 받기에 충분했다. 2004년부터 시작된 세계초연 희곡공모에는 올해 모두 33편의 작품이 접수돼 엄정한 심사를 거쳐 우수작 2편이 선정됐다. 이 작품들은 전문극단에 맡겨 내년 거창국제연극제에서 초연된다.

지난해 이 공모를 통해 뽑힌 '그 여자의 바다'를 극단 '입체'가 올해 연극제에서 공연했다. 무대디자인 응모전은 국내에서는 처음 실시되는 것으로, 지난해 희곡공모에서 뽑힌 '그 여자의 바다'의 무대디자인 작품을 만들도록 했다. 이 응모전을 통해 연극계가 극작과 연출, 연기분야 일변도에서 벗어나 무대기술분야로까지 영역을 확대한 것이다. 학술세미나와 워크숍, 연극학교도 열려 그야말로 연극의 물결이 넘실댔다. '야외극의 양식과 방향'에 관한 세미나를 비롯한 세 가지 주제의 세미나가 열렸다. 워크숍으로는 '스토리텔링'과 '스타피큐렌 오브제극 제작과 운영' 등 네 가지가 마련됐다. 또 어린이와 청소년 연극학교, 연극지도교사 아카데미도 열렸다. 거창연극제의 인프라 확충은 물론 국내 연극계 저변확대에 큰 활력소로 작용했다.

'바캉스 씨어터'란 관광상품도 내놓았다. '자연과 예술이 하나된 새로운 웰빙휴가! 거창국제연극제 <바캉스 씨어터>'란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마련된 1박2일 코스의 여행상품으로, 거창에서 여름휴가도 즐기고 연극공연을 보는 것으로 돼있다. 유럽 각국이 여름 휴가철에 문화축제를 벌이면서 국내외 관광객들을 불러들이는 사례를 꼼꼼히 되새긴 거창연극제가 도입한 것. 국내 여타 축제에서도 검토해봄직 하다. 또 홈페이지를 통한 'KIFT 이벤트' 행사도 마련해 당첨자 30명에게 사랑티켓을 보내준 것도 좋은 사례이다.

자칫 관객들이 연극 일변도의 행사에서 식상함을 느끼지 않도록 하기 위해 토피어리 만들기와 압화, 악세사리 만들기 등 10여가지 체험행사를 비롯해 패러그라이딩, 우수농산물 판매 등의 행사도 마련됐다. 그러나 이 행사들은 더욱 알차게 꾸며져야 할 것으로 보여졌다. 관객들이 다양한 프로그램을 접할 수 있도록 연극축제란 주제를 깨뜨리지 않는 선에서 여타 프로그램의 개발은 물론 인프라 확충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국내 최고의 야외연극축제로 자리잡은 거창국제연극제는 아시아의 아비뇽으로 비상을 예비하고 있다. 2008년 연극제 창립 20주년을 맞아 '연극도시-거창'으로 발돋움하기 위한 로드맵을 준비하고 있다. 그래서 거창국제연극제는 집중화와 고유화, 차별화, 역사성을 통해 축제의 세계화와 문화산업화, 관광자원화를 목표로 새로운 열정과 감동의 무대를 만들어 나갈 것이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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