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인네 손때에 그을린 장안사 배불뚝 포대화상
산허리 절벽에 걸터앉은 척판암 단풍감상 명소
깔끔 새단장 해동용궁사 고졸한 옛풍경 아쉬워

#장안사와 척판암

장안사로 들어서는 길목은 가을이 한창이다. 수 킬로미터 이어지는 진입로는 기룡마을을 가로지르는데 길가 촌노들이 들고나온 가을걷이 농산물들이 더욱 가을 정취를 느끼게 한다. 아이 머리만한 배를 내놓기도 하고, 노랗게 익은 늙은 호박과 때를 못맞춘 푸른 애호박이 함께 나뒹군다. 햅쌀과 찐쌀을 한 광주리 이고 나온 할머니도 있다.

개인이 운영하는 한 수목원 입구를 지나치는데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 등 장승 가족들이 입을 헤벌린 채 웃고 있다. 묵직한 가을 들녁을 지난 뒤 산 옆머리를 돌아서면 지난 여름 새로 정비한 목책 인도와 차도가 이어지고 이내 고목으로 우거진 장안사 주차장에 다다른다.

아담한 장안사 경내는 유난히 여자들의 발길이 잦다. 아이를 못 갖는 여인네는 아이를 갖게 해달라고, 어린 자식을 먼저 보낸 엄마와 할머니는 아이의 영혼이 극락에서 행복해지길 기원하는 마음으로 장안사를 찾는단다.

대웅전 앞을 지키는 배불뚝이 포대화상의 코와 배는 여인들이 들며나며 문질러 손때로 까맣게 그을렀다. 불당 앞 작은 연못 옆에는 천년도 더 된 불상이 세월을 고스란히 드러낸 채 유리곽 안에 모셔져 있다. 불상 앞에서도 여인들이 끊어질세라 합장세례가 이어진다.

한눈에 다 들어오는 장안사를 둘러보는데는 오래 걸리지 않는다. 20여분 정도 대웅전과 불당 사이를 오가면 구경거리는 더이상 없다.

장안사를 빠져나와 표지판을 따라 척판암 가는 길로 올라간다. 차도가 잘 닦여 있지만 시간이 넉넉하다면 걸어서 오르기를 권한다. 차로 이동하면 2~3분, 걸어서 가도 10~15분이면 척판암 오르는 산길 진입로인 대숲 터널에 도착할 수 있다.

이 곳에서 10년 째 각종 마실거리와 샌드위치를 팔고 있다는 길카페 아주머니는 "평일에는 한적하지만 주말이면 무슨 시위대가 오는 것처럼 사람들로 북적인다"면서 "10여분만 산길을 오르면 바로 척판암이 나온다"고 알려준다.

짧은 시간이지만 산길은 그렇게 만만치 않다. 어린 아이들이 곧잘 미끄러지기도 한다. 새로 세운 듯한 일주문인 듯 척판암 입구의 기와를 얹은 대문에는 원목 특유의 기름 냄새가 아직도 배여있다. 산 허리 절벽에 걸터앉은 척판암의 좁고 긴 마당은 등산로로도 이용된다. 약숫물은 기대와는 달리 미지근하다. 하지만 대웅전 앞 작은 평상은 맞은편 산자락의 단풍을 감상하기에 그만이다.

#해동용궁사

해동용궁사는 우리나라에서 바다와 가장 가까운 절이 아닌가 싶다. 파도가 거센 날은 절 앞마당까지 물이 들이친다. 좁은 바위 틈새에 자리잡았던 해동용궁사도 아름답지만 대웅전 뒷편 거대한 불상 아래에서 내다보는 바닷풍경 또한 압권이다.

하지만 기억을 더듬어 10년만에 다시찾은 해동용궁사는 변해도 너무 변했다. 대변항을 거쳐 해운대 방향으로 내려가는 국도가 몰라보게 넓어져서 혹 길을 잘못 든 것이 아닌가 착각이 들 정도다. 겨우 교행이 가능하던 도로는 야자수로 중앙분리대까지 만들어 놓았다. 절 진입로에는 별난 모양의 카페 건물과 대형 식당이 들어섰다.

십여대 남짓 댈 수 있던 주차장 또한 대형 버스 수십대를 거뜬히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넓혀져 있다. 용궁사로 들어가는 길목에는 큼직한 십이지신상이 일렬로 서 있다. 2~3채에 불과하던 불당은 큼직한 새 대웅전을 비롯해 다섯 채로 늘어났다. 위험하다고 출입을 삼가던 해안절벽 쪽으로는 해맞이용 기도도량을 세우면서 길을 터 놓았다.

번듯하고 깔끔해졌지만 고즈넉한 옛 풍경이 사라진 듯 해서 아쉬운 마음이 더 든다. 하지만 첫 방문으로 옛 풍경을 알리없는 이들은 바다와 인접한 용궁사 풍경에 여전히 감탄을 늘어놓는다.

여행수첩

▶먹거리

장안사 입구에 식당촌이 있다. 옛 초가를 개조해 식당으로 꾸민 고가가 유명하다. 방갈로같은 별채도 있다. 정원에는 국화가 한창이다. 메기매운탕 2만~3만5000원, 오리불고기 2만5000원, 촌닭백숙 3만원. 051·727·9292.

▶찾아가는 길

아홉산숲, 장안사, 해동용궁사 등은 부산방면 14번 국도를 중심으로 좌우에 위치한다. 공업탑 로터리에서 해운대 방향으로 25분만 달리면 제일 먼저 장안사를 알리는 표지판이 나온다. 아홉산을 가려면 그곳에서 5분여 더 해운대 방향으로 달려야 한다. 좌천 네거리에서 정관방향으로 우회전한 뒤 10여분 달리면 정관 농협이 나오고 다시 남쪽으로 10여분 더 달리면 웅천리에 다다른다. 웅천노인회관에서 왼편 개울을 건너면 아홉산이 보인다. 해동용궁사는 좌천 네거리에서 해운대방향으로 10여분 더 내려온다. 기장 농협에서 대변항쪽으로 좌회전한 뒤 대변항을 거쳐 외길을 따라 내려오면 용궁사 표지판이 나온다.

글·사진=홍영진객원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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