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음사·어리목·성판악·영실 4개 등산 코스중
영실코스 가장 짧고 무난 가족 등반 안성맞춤
시시각각 변모 병풍바위·군데군데 오름 장관
2시간 고행뒤 정상정복 쾌감 '잊지못할 추억'

제주 한라산 등산에 나섰다. 등산을 좋아하는 아이들 아빠를 위한 배려이기도 했지만 어린 아이들이 한라산을 한번 오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았다. 아이들이 무엇을 느낄 지 알 수는 없지만 그냥 체력의 막바지까지 이를만큼 힘든 상황을 이겨내는 것만으로도 보람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어린아이가 둘이나 낀 가족 등반인지라 관음사, 어리목, 성판악, 영실 코스 등 4개의 등산 코스 중 가장 짧고 무난하다는 영실 코스를 선택했다.

3.7km 영실 코스, 왕복 소요시간은 3시간30여분. 금쪽같은 한 나절을 등반으로만 채우려니 괜스레 마음이 조급해진다.

김밥, 비빔밥, 우동 등 분식으로 간단하게 아침 요기를 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등산로 첫 머리는 적송 군락지다. 넓은 산죽 이파리들이 붉은 나무기둥과 대조를 이루고 있다. 외길로 이어진 등산로는 두 명이 나란히 올라가기 알맞다. 경사도 없고 군데군데 나무 계단을 만들어 놓아 힘들지 않다. 양옆으로 가는 줄을 이어놓아 혼자 산을 올라도 길을 이탈할 염려는 없다.

아이들도 수월하게 오를 정도로 무난한 코스지만 입동이 지나면 오후 2시 이후엔 입산을 통제한단다. 조금 더 오르니 이유를 알 것 같다. 산행을 시작한지 얼마나 지났을까. 갑자기 깎아지른 돌계단이 나온다. 계단은 족히 30여분 이상 이어진다. 계단마다 아픈 다리를 주무르는 등산객들이 버티고 섰다. 전라도에서 수학여행을 왔다는 한 고등학생 무리는 이 돌계단에서 모조리 하산하고 말았다. 다음 일정에 차질을 염려한 주임교사의 배려란다. 뒤따라온 가족 여행단 중 나이든 어머니는 "무릎이 다 아작나겠네. 놀러와서 이게 뭔 짓이여…"라며 어이없는 웃음을 짓는다.

설상가상이다. 갑자기 그늘이 벗겨지면서 쨍한 햇살에 눈이 시리다. '벌써 다 올라왔나?'했더니 이번엔 절벽 난간으로 이어진 등산로가 나타난다. 등산로를 따라 더듬어 살펴보니 올라온 산길보다 몇 곱절은 더 오르막이다. 그것도 한 길 낭떠러지 옆을 말이다. "어디까지야? 더 가야 돼?" 아이들이 난리다. "조금만 더 올라가면 된다"는 약발도 먹히지 않는다. 급기야 "아빠 혼자 올라갔다 오라"며 아이들이 최후통첩을 보낸다. 평발이라 등산엔 젬병인 나도 슬슬 아이들 쪽으로 마음이 기운다. "애들 데리고 천천히 내려가고 있을게…."

실랑이를 지켜보던 한 할아버지가 "이보게나, 쉬엄쉬엄 가게." 한다. 제주에 사는 한 무리 노인들이 한 마디씩 거든다. "저기만 넘어서면 오르막은 없는데…." "고라니도 봐야지." "꼭대기 휴게소에 맛난 것이 얼마나 많은데…."

노인네들의 말을 듣기를 잘 한 것 같다. 그대로 하산했다면 큰 손해를 볼 뻔 했다. 병풍바위로 불리는 영실 기암은 시시각각 모양이 변한다. 수백m 높이의 병풍 바위에 올라선 뒤 단풍과 돌무더기가 뒤범벅 된 산세를 감상하는 맛이 기막히다. 비스듬하게 이어진 제주 허리선은 눈부신 남쪽 바다와 맞닿아 있다. 서쪽으로 뻗어간 옆선은 군데군데 오름과 억새물결로 또다른 장관을 보여준다.

등산로 끝자락에 자리한 노루샘을 그냥 지나치는 이들은 별로 없다. 준비했던 물을 대부분 마셔버린 터라 미지근한 약숫물이 정말로 달디달다. 아이들도 표정이 밝아진다. 뭔가 모를 뿌듯함이 가슴 속에 들어차는 것이 얼굴에서 읽혀진다. 이만하면 기대했던 성과를 거둔 것인가.

영실 기암에서 목표지점인 윗세오름까지 1km 남짓 거리는 가벼운 산책로다. 큰 갈지(之)자 모양의 목침을 밟고 한 걸음씩 내디딜 때마다 백록담 자락이 성큼성큼 다가온다.

▶여행수첩 - 제주여행 팁

제주관광을 위한 할인 항공권이나 관광상품이 넘친다. 하지만 일정이나 내용을 세세히 점검해야 실속있는 할인 혜택인지, 허울뿐인 미끼인지 가늠할 수 있다.

우선 할인항공권은 일반 항공권보다 30~50% 정도 저렴하다. 하지만 서울발 제주행 항공권에만 국한된 경우가 많다. 울산 및 경남권에 거주하는 관광객들은 할인 항공권 혜택을 받기가 어렵다. 항공권을 구했다치더라도 시간대를 살펴보면 대부분 오후에 출발하고 오전에 돌아오는 세트 구매로 판매되기 때문에 일정에 제약을 받는다. 오후 늦게 제주에 도착한 뒤 하루 더 숙박하는 비용을 감안하면 할인 항공권은 아예 포기하는 편이 더 실속 있다.

또 여러 사이트에서 소개하는 카텔(펜션과 렌트를 함께 구매)상품을 훑어본 뒤, 펜션으로 직접 예약을 의뢰하면 비용을 줄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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