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울산의 대표기업 중 하나인 현대중공업의 노동조합이 주도하여 장기기증서약을 통해 참사랑의 실천운동을 전개하였다는 소식은 한국국민 모두가 깊은 감동을 느끼기에 충분한 사건이었다. 물경 6000명이 넘는 인원이 이에 참여키로 했다는 점도 놀랍거니와, 노동자의 임금과 복지문제에만 매달리는 노동조합이 주도했다는 점이 새삼스럽다.

세계 최강의 현대중공업 노동조합이 10여 년간 무분규인 것만도 놀랄만한 일인데, 이제는 회사사랑을 넘어, 사회사랑, 인간사랑에 까지 그 범주를 넓혔다는 사실에 깊은 찬사를 보낸다. 글로벌 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기업주가 사회에의 기여, 불특정한 인간 사랑을 행하는 것이 기본이다. 빌 게이츠가 그랬으며, 가까이 정주영 명예회장이 아산재단을 만들고, 이병철 회장이 호암재단을 만들어 사회에 기여하고 있음은 한편은 사회에의 기여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기업의 이미지 제고에도 크게 이바지 한다. 그런데 이러한 일을 노조가 실행에 옮겼다니 어떻게 보면 기업주가 노조에게 선수를 놓친 모양 같아 보이기도 하다.

자고로 인간의 사랑은 자기애(自己愛)에서 출발한다. 어렸을 때, 맛있는 과자를 보면 형, 아우도 안 보인다. 모든 것을 내가 차지해야 한다. 조금씩 커 가면서 사랑의 범주는 조금씩 넓어져 가족애(家族愛)로 성장한다. 가족 중의 한명이 누군가에게 얻어맞거나, 욕을 먹으면, 가족의 일원으로서 아픔을 같이 나누고 심지어는 복수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최근의 모 재벌 회장의 사건도 이 수준의 빗나간 원초적 사랑에 다름 아니다. 이제 더욱 나이를 먹어 학교에 들어가면, 그 사랑의 범위는 자기가 속한 학교에까지 넓어진다. 다른 학교 다니는 누군가가 우리 학교를 폄하하면 참기 어렵다. 초·중고교, 대학에 이르기까지 각종 동창회에의 소속감은 이러한 사랑 또는 동질감의 표현이며 대개 평생 간다. 나이를 더욱 먹어 외국에라도 나갈 기회가 생기면 그 사랑의 범주는 국가애(國家愛)로까지 성장한다.

외국에서 만나는 한국인은 모두가 한뜻이요 한마음이 된다. 대체로 사랑의 성장은 거기서 끝난다. 별 관계없는 사람에게 갖는 인간애(人間愛), 국적을 초월한 인류애(人類愛)는 소수의 특별한 사람들에게 국한되는 것이 보통이다. 슈바이처 박사, 데레사 수녀, 이수현 열사, 국경없는 의사회, 해외 청년 봉사단….

21세기 들어 국제사회는 하나의 사회로 급속히 통합되고 있다. 국경이라는 개념조차 새로이 생각해야 할 정도로 글로벌리즘이 확산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룰, 너희나라의 룰이 따로 없이 하나의 룰로 통합되고 있다. '우리 것이 가장 좋은 것이여' '신토불이'를 아무리 외쳐도 우리의 저녁식탁에 오르는 밥은 미국산, 생선은 칠레산, 고기는 호주산, 김치는 중국산이 되고 있다. 국산차를 사야 애국자요 외제차를 사면 뭔가 매국하는 것 같이 느끼던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좋고 싼 차가 가치우선 순위에 두어진다. 맥도날드, 아웃백 스테이크, 스타벅스 커피숍도 전 세계적으로 인기 발군이다.

문제는 이러한 글로벌 사회에서 굳건히 살아남으려면, 아니 부강한 국력을 유지하려면, 무엇에 우선해서 개개인이 사회에 대한, 인류에 대한, 지구에 대한 폭넓은 사랑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다시 말해, 국민 개개인이 얼마나 커다란 사랑의 크기를 갖느냐 하는 것이 미래의 국력의 밑바탕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다.

자원이 풍부한 아프리카의 어느 나라는 발전기가 집집마다 있다고 한다. 같이 모여 발전하면 훨씬 경제적일 텐데 그게 안 된단다. 사랑의 크기가 나와 가족을 넘지 못하기 때문이리라. 일본은 자위대를 기본으로 하는 평화헌법을 고쳐 남의 나라를 공격할 수 있는 군대의 보유를 골자로 하는 개헌을 하고자 시대를 거꾸로 가면서도, 지구상의 빈국을 돕는 데에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의 돈을 쏟아 붓고 있다. 전형적인 일본식 국가주도형 인류애의 모습이다. 현대중공업 노조의 인간애 실천, 이는 현대 중공업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는 굳건한 계기를 만들었다는 데에서도 그 의의를 찾고 싶다.

박정국 동강병원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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