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보훈의 달이다. 언제나 유월이 오면 '초연히 쓸고 간 깊은 계곡'으로 시작하는 '비목'의 노랫말이 입속에 맴돈다. 어디선가 흑백영상으로 본, 서부전선의 이름 모를 골짜기에 나동그라져 있는 낡은 철모와 번지 없는 산속에 수풀만 가득한 무명의 작은 묘소도 떠오른다.

그들은 남북의 위치도 모르는 칠흑 같은 어느 전선의 벙커에서 낡은 철모를 가만히 옆에 벗어두고, 두고 온 고향의 어머니와 개구쟁이 동생들, 밤하늘의 맑은 별빛을 불빛삼아 모깃불 피워 놓고 가족끼리 오순도순 모여 밤이 세는 줄 모르고 나누었던 정담을 추억했을 것이다. 그들은 이 전쟁이 빨리 끝나 고향의 가족들과 함께 할 날을 염원하다 깜빡 잠이 들었을 것이다. 그들은 목숨을 담보로 무덥고 무서운 전쟁 속에서도 한푼두푼 모은 돈으로 시골의 부모께 드릴 트랜지스터라디오, 동생들에게 줄 초콜릿을 챙겼을 것이다. 우리는 알고 있다. 그렇게 고향을 그리다가 영원히 고향의 길을 잃어버리고만 애달픈 사연들이 한둘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래서 하얀 소복차림의 늙은 노모가 빈 소주잔을 만지작거리면서 눈물마저 말라버린 눈으로 유월의 푸른 하늘만 원망스럽게 쳐다 보다 애꿎은 잔디만 뜯어내는 국립묘지의 풍경을 볼 때마다 함께 가슴이 저린다.

예전엔 유월이면 각 학교나 관련단체에서 반공이라는 국시(國是)의 미명아래 '공산당을 쳐부수자'라는 구호 일색이었다. 물론 세월이 지난 지금에 와서 다시 생각해보니 시대 상황이 그러했고, 정권유지의 목적이 다분히 존재했다는 것을 새삼 알 수 있다. 그래서 흔히들 유월이면 동족상잔의 6·25 전쟁과 현충일만 생각하기 십상이다.

지금 우리 젊은이들에게 호국보훈이 무엇이냐고 질문하면 어떻게 답할지 궁금하다. 개인적인 견해로 전쟁이라는 단어만 알고 있으리라고 지레짐작해 본다. 현시대에는 이념과 사상이 단일화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라고 믿고 싶다. 일방적으로 한 국가가 전쟁을 선포하고 침범하는 것은 이웃의 세계가 용납하지도 않고 경제적으로 어떤 결과가 올 것인가를 잘 알고 있기에 예전의 1, 2차대전처럼 나라를 빼앗고, 뺏기는 악순환은 결코 일어나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그런 생각을 할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호국보훈의 참의미는 신분이 높든 낮든, 학식이 있든 없든, 국가를 위해서 자신의 할 일을 성실하게 수행하는 것이 아닐까.

오늘의 대한민국이 경제대국을 이루며 민주주의 초석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모두가 이름 없이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선조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에 해외와 만주, 그리고 국내에서 조국의 광복을 위해 자신의 가족도 돌보지 않고 헌신한 독립투사들, 동족상잔의 6·25전쟁의 학도의용군과 국군용사, 유엔에서 참전한 16개국의 고마운 이방인들, 조국민주화 염원을 안고 책가방을 품에 안고 독재에 저항했던 4·19학생들과 민주시민들, 군사정권을 종식시킨 6·10민주화운동의 수많은 시민과 학생과 지식인들, 금남로의 살신성인 5·18광주민주영령들이 모두 오늘날 우리를 있게 한 영웅들이다.

열사의 사막에서, 저 지구 끝 남미에서, 독일의 광산에서 온갖 멸시와 인종차별 속에서도 조국의 경제부흥과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한 우리 모두가 있었기에 오늘의 건강하고 아름다운 대한민국이 있는 것이다.

유월의 초록빛 산야가 오늘은 더욱 푸르러 보이고 산새의 노래 소리는 활기에 넘친다. 인동꽃 향기는 예전의 그대로이고 산딸기가 익어가고 먼 산의 뻐꾸기 소리가 아름답다. 우리의 산하 아! 대한민국 금수강산…. 통일의 그날을 발원한다.

오심스님 월봉사 주지·울산시립노인요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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