겹겹이 둘러친 봉우리 발길 뜸한 능선 원시비경 그대로
최적의 조망지 대남바위 굽어보면 분맥길 한눈에 '쏘옥'

사룡산에서 분기한 비슬지맥은 구룡산~발백산~대왕산~선의산을 지나 용각산에서 다시 남으로 장대한 능선줄기를 내려놓는데, 바로 대남바위산~건태재~오례산성을 지나 내호마을로 이어지는 줄기가 용각분맥이다.

용각분맥은 영남알프스 주봉인 가지산에서 가장 동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용각산~대남바위산~오례산성까지 약 25㎞ 구간이다. 용각산을 따라 대남바위산으로 이어지는 능선 길은 아직 산인들의 발길이 뜸해 원시의 비경을 간직한 곳이다. 전망대에서 바라보이는 청도 동창천과 영남알프스의 수려한 풍광은 산꾼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곰재에서 시루봉을 지나 용각분맥을 따라 내려오다 보면 청도 오지마을인 삿고개 마을과 옛 이서국의 군사적 요충지였던 오례산성이 자리하고 있다.

각산을 오르기 위해서는 청도군 매전면에 소재한 두실마을 회관까지 가야한다. 절골에서 말마루고개로 올라 용각산에 올라서면 대남바위산으로 이어지는 용각분맥길은 용이 승천하듯 꼬리를 길게 물고 있다.

곰재에서 8부능선까지는 임도길이라 산행에 별다른 어려움이 없다. 곰재를 지나 효양산과 비룡산으로 향하는 분맥 길은 산들이 겹겹이 둘러쳐져 공룡의 등짝을 오르락내리락 하는 기분이다.

청도의 산들은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이 그 매력이다. 폐 속 깊숙이 들이미는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능선 너머로 바라보이는 영남알프스의 매혹적인 산군에 심취하다 보면 시루봉 정상이다.

암봉이 우뚝 솟은 시루봉 정상은 사방이 훤하다. 용당산과 대남바위산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다가서며, 뒤돌아서면 용각산과 선의산이 거침없이 펼쳐진다. 시루봉 정상을 내려와 발걸음을 재촉하면 첩첩산중에 자리한 삿고개가 나온다. 이곳 삿갓마을은 예전에는 17가구나 살았지만, 지금은 한가구만 남아있다. 뽕나무가 많은게 특징이다.

삿고개를 지나 20~30분쯤 오르막을 힘겹게 올라서면 대남바위 정상이다. 용각분맥상의 가장 높은 봉우리로, 산정아래 자리한 거대한 암봉 대남바위는 분맥 길이 한눈에 들어오는 최적의 조망지다. 오례산성으로 향하는 능선 길이 끝없이 펼쳐진다.

대남바위를 지나면 고갯길을 낸다고 흉물스럽게 산자락을 파헤친 건태재로 내려온다. 건태재에서 청도 환경관리센터까지는 널따란 임도길이다. 산정 곳곳에 문명의 흔적으로 파헤쳐져 있어 도심 외곽의 공장처럼 흉물스럽다.

오례산성 길은 쓰레기 매립장 울타리를 따라 산길로 접어든다. 하늘을 뒤덮은 송림 숲을 헤쳐 가며 유유히 흘러가는 청도천을 내려다보면 산행의 즐거움이 한층 더해진다. 코끝을 스며드는 솔향에 취해 이름 모를 고갯마루와 봉우리 몇 개를 넘나들면 널따란 평지가 나오는데 오례산성 터다.

오례산성은 이서국 변방을 지키는 산성으로 보이나 대부분 허물어지고 지금은 그 흔적만이 남아있다. 임진왜란전 충청도 방어사 박명현이 조정의 명을 받아 수축(보수)공사를 시작했다가, 정세가 위급해 끝마치지 못했다 한다.

이서국은 청도군 이서면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삼한 소국(小國)의 하나다. 서기 297년. 신라 유례왕이 이서국을 공격하려하자 위기감을 느낀 이서국은 서라벌(경주)을 공격, 이서산성에서 최후의 결전을 벌였다.

산성이 쉽사리 무너지지 않자, 왕은 보양스님께 산성을 무너뜨릴 해법을 물었다. 왕이 "이서산성은 달리는 개의 형상을 하고 있다. 개라는 짐승은 밤에는 잘 지키지만 낮은 지키지 못하고, 앞은 지켜도 뒤는 꺼려한다. 낮에 북쪽을 공격하라"는 스님의 주문을 따라 했더니 산성이 함락됐다. 이서국과 관련한 왕이나 왕족의 무덤이 발굴된 적은 아직 없다. 학계는 이서국이 신라를 공격할 만큼 강했기에 다른 소왕국들보다 더욱 혹독하게 지배하는 과정에서 훼손 또는 사라졌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오례산성을 한 바퀴 둘러보고 산성을 가로지르면 또 하나의 용각산이 기다리고 있다. 용각산 바로아래 용(龍)의 눈에 자리한 대운암이 나그네의 발길을 붙잡는다. 이른 새벽 여명을 깨우고 시작한 산행길이 벌써 용각산 자락에 석양을 드리웠다.

산행은 고행이다. 하지만 깨달음을 얻을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고행을 마치고 멀어져가는 저녁노을을 따라 하산 길을 재촉하다보면 이내 발걸음은 내호마을에 다다른다. 용각분맥은 영남알프스 분맥 중 최장의 능선이라 건태재에서 나누어 산행하는 것이 좋다.

청도 오례산성, 대운암, 동창천 삼족대, 불영사 천불탑

청도 운문면 운문산가든

(054·373·6779)

△청도~곰티재~운문사행: 첫차 09:10분, 막차 19:45분

문의 청도시외버스터미널(054·372·1565), 운문사정류소(054·373·8070)

이병진 대한백리산악회 산행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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