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희 교수가 주장한 처용=문원, 처용처=정화부인, 역신=예겸 가설에 바탕을 두고 '처용설화 외설론'을 주장하고 있는 울산대 김진 교수는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화랑세기>에 나타난 신라의 왕실을 비롯한 지배층의 성풍속 -근친혼, 색공, 마복자, 어색, 형사취수, 삼서제 등- 을 방증으로 제시하는 한편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기록에 나타난 성풍속을 제시하고 있다.

김교수 외설론의 핵심부분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문원이 처용이 맞다면 헌강왕이 그에게 내린 정화부인은 그 미색으로 인하여 왕실에서 주목받았을 가능성이 크며, 따라서 헌강왕이나 시중 예겸이 눈독을 들였을 것임은 자명하다. 그녀가 문원에게 주어진 이후에도 그들의 성적 관계가 지속되었을 것이고, 그 과정에서 문원과 예겸이 대립하게 되었을 것이다."

박인희의 가설을 수용한 것임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이미 살핀대로 '문원이 처용이 아니므로' 위의 추론은 허구에 불과하다. 김교수가 이 논지에서 '맞다면' '가능성이 크며' '눈독을 들였을 것' '지속되었을 것' '대립하게 되었을 것' 등 가정과 추론으로 일관한 것은 자신의 외설론을 사료로써 입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외설론이 허구임을 여실히 밝혀주는 대목이다.

이처럼 확증할 수 없는 외설론을 견지하기 위해 김교수는 <화랑세기>에 나타난 신라왕실과 지배층의 성풍속을 원용하였다. 그러나 여기의 성풍속은 당시대의 역사적 상황에 맞추어 읽어야 한다. 그것은 김교수 자신이 언급한대로 '신라왕실과 풍월주의 골품을 유지하는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어느 시대이든 개인의 문란한 사생활은 있을 수 있기 마련이다. <화랑세기>에 이러한 사례들이 나타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특정 사실을 일반화하여 진실로 확정하는 것 또한 올바른 연구자세가 아니다. 우리는 <화랑세기>의 사료적 가치를 발굴하고 연구한 이종욱 교수의 다음 말을 새삼 경청할 필요가 있다.

"색공은 신라의 윤리에서 보면 조금도 이상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왕의 후계자를 생산하는 한 가지 방법이었다." "<화랑세기>에 나오는 남녀 모두 정처나 남편은 한 사람뿐으로 당시 신라사회가 처첩제를 엄격하게 유지하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조선시대 양반들은 어떠했나? 그들에게도 처와 첩은 있었다."

김교수는 외설론을 정당화하기 위해 사료를 왜곡하여 해석하기도 하였다. 그는 <삼국사기>에 전하는 헌강왕의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 -사냥을 구경하다가 길 가에 있는 아름다운 여인을 보고 '마음으로 사랑하여' 행재소에서 야합하여 아들을 낳았으니 이름을 요(효공왕)라 하였다- 를 "헌강왕이 울산을 방문했을 때 처용(문원)의 정혼자를 보고 강탈했을 가능성, 울산의 박씨문중으로부터 색공을 받았을 가능성도 생각할 수 있다"라고 추론하였다.

<삼국유사>에 실린 도화녀의 '천자의 위엄 하에서도 두 남편을 섬기지 않겠다는' 정절을 "신라 여인이 매우 정숙한 것처럼 기술하고 있지만… 사통하기 위해 남편을 죽이고자 하는 무서움을 간파할 수 있다" 하여 불륜으로 왜곡하였다. 김교수의 이러한 사료 왜곡 해석은 그의 글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이렇듯 김교수의 외설론은 박인희의 가설에다 확정되지 않는 사실을 가정, 추론하거나, 사료를 왜곡 해석하여 입론한 허구에 불과하다. 이를 논거로 한 처용문화제 명칭변경 주장은 철회되어야 마땅하다. 김 교수의 진지한 반론을 기대한다.

송수환 역사학자·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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