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신문사와 방송사가 첨예하게 대립한 적이 있다. 이 싸움은 거의 동일한 기능을 수행하지만 매체의 특성이 달라 시장을 놓고 각자의 특성을 가지고 경쟁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신문사는 인터넷 신문을 가지고 방송에 비해 열세인 실시간성을 보완하고 있고 방송사도 각종 기획프로그램을 통해 전문성을 보완하고 있다. 이러한 경쟁은 현재도 진행 중이지만 앞으로는 신문사가 방송을, 방송사가 신문을 제작하는 방향으로 갈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최근에는 방송과 통신의 융합을 놓고 방송사와 통신사가 첨예한 대립을 해왔다.

물론 방송통신위라는 통합적인 규제기구가 발족하면서 통합기본법에 대한 입법예고를 함으로써 이제 통합의 실마리는 풀린 셈이다.

신문사와 방송사간의 문제는 시장을 놓고 경쟁하는 상태여서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어떻게 보면 좋은 품질의 서비스를 양쪽으로 받는 복을 누렸다. 그러나 방송사와 통신회사간의 대립은 사정이 완전히 다르다. 양 회사 간의 대립은 결과적으로 소비자에게 방송과 통신이 융합된 새로운 개념의 서비스 제공이 지연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유는 이렇다. 방송과 통신사업이 각각 방송법과 통신법의 규제를 받는 엄격히 분리된 사업 영역이어서 방송사가 통신사업을 할 수 없고 통신사가 방송사업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각각 분리된 사업영역에서 사업을 하면 그 뿐인데 문제는 그간의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방송기술과 통신기술의 차이가 없어져서 방송과 통신 융합서비스가 출현했는데 국내의 이러한 분리된 법 때문에 방송사도 통신사도 융합기술에 의해 설계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는 데 있다.

전통적인 방송과 통신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서로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다. 방송은 단일방향으로 통신은 양방향으로 데이터가 흐르고, 방송은 1대 다수, 통신은 1대 1 대화를 하고 방송은 공익적인 특성이 강한 반면 통신은 상업적인 특성이 강하다. 그런데 기술의 발전으로 디지털 기술에 바탕을 방송통신융합서비스를 통신사가 하게 되면 방송사는 영역의 침해로 볼 수밖에 없어서 방송통신융합법의 제정에 소극적이었다. 물론 방송사도 통신사업을 할 수 있지만 자본의 규모나 자신의 망에서 상대방의 서비스를 올려놓는 사업성을 보면 방송사가 불리하다고 본 것 같다.

인터넷으로 TV(IP TV)를 본다면 소비자는 통신망을 통해 방송 서비스를 제공받게 되는 셈이다. 융합에는 서비스, 망, 사업자의 융합 등 전문적인 내용이 있으나 이러한 전문적인 내용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자기영역의 고수가 집요할 때 발생하는 국가적인 손실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 몇 자 적어보고자 한다.

영역을 고수하려는 방송사나 통신사만을 나무랄 수는 없다. 누구나 자신들의 생존 또는 번영을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다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러한 문제에 관련 집단, 즉 방송사, 통신사, 소비자, 관련기술을 제공하려는 산업계를 통합하려는 정부의 노력과 정부가 가진 실력이다.

방송과 통신은 기술과 서비스의 특성상 서로 넘나들 수 없는 부분이 존재하여 대부분의 국가가 통신과 방송을 별도로 다루는 법체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미국, 영국, 일본 등은 법령을 개편하거나 제3의 법을 제정하는 등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방통 융합을 대비해왔다. 이 결과로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90년대 말 정도에 사업의 융합이 법적으로 가능하게 되었다. 우리는 2008년에나 가능하게 되었으니 속도가 중요한 이 분야에서 8년의 세월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사업이 융합되면 소비자는 융합서비스를 받게 되는 것은 당연하고 이를 통한 부가가치의 창출은 구체적으로 얼마나 되는지 필자가 알 수 없지만 어마어마한 액수가 될 것이다. 또한 관련 산업 측면에서 보면 통합법 제정이 지연되어서 관련기술개발이 늦어져 기술 경쟁력이 약화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우리나라가 IT 기술부문은 그래도 국제적 경쟁력을 가졌다고 평가받고 있는데 관련법 제정을 통한 관련 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적극적으로 유도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물론 정부가 숱한 노력을 했겠지만 실기의 책임은 면할 수 없다.

허정석 울산대학교 산학협력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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