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8일 대낮, 도쿄 번화가인 아키하바라(秋葉原)에서 무차별 살상 사건이 발생했다. 낮 12시35분쯤 25세의 한 남성이 2곘 트럭을 몰고 갈 지(之) 자로 주행하면서 아키하바라에서 가장 인파가 많은 교차로로 돌진했다. 당시 이 도로는 휴일을 맞아 행인들에게 차도를 개방하는 '보행자 천국'을 실시하고 있었다. 차례로 행인들을 친 남성은 트럭에서 내린 뒤 흉기로 행인들을 찌르기 시작했다. 놀란 행인들이 사방으로 도망갔지만 인파에 밀려 모두 17명이 차에 치이거나 흉기에 찔려 7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른바 '묻지마 살인'이었다.

이어 지난 7월22일엔 도쿄 하치오지의 한 서점에서 한 남성이 휘두른 흉기에 여대생이 살해됐고, 이후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도쿄에서 서남쪽으로 70㎞ 정도 떨어진 한 기차역에서 한 여성이 흉기를 휘둘러 7명의 남성이 다치기도 했다. 이 같은 범행은 지난 10년 동안 일본에서 70여 차례나 발생했으며 최근 그 양상이 더 심각해지고 있다.

한국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지난 4월 강원도 양구에서 운동을 하던 한 여고생이 30대 남성이 휘두른 흉기에 찔려 숨졌고, 7월22일엔 한 30대 남성이 강원도 동해시청 민원실에 난입해 칼부림을 벌여 공무원 1명을 숨지게 했다. 또 지난 8월15일 오후에는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 모 초등학교 앞에서 20대 남성이 길 가던 40대 생수배달업자에게 흉기를 휘둘러 살해했다.

급기야 20일 오전 8시40분 쯤 서울 강남구 논현동 한 고시원에서 30대 무직자가 불을 지른 뒤 흉기난동을 벌이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30대는 거주하던 고시원 3층 책상에 인화성 액체를 뿌리고 불을 질렀다. 이것도 모자라 3층 입구에서 화재를 피해 도망 나오는 사람들에게 마구 흉기를 휘둘러 현재 여성 6명이 사망했고, 7명이 중경상을 입어 치료를 받고 있으나 사망자가 더 늘어날 추세다.

이 같은 '묻지마 살인'은 수년 전까지만 해도 극심한 장기불황에 허덕이던 일본에서 주로 발생했지만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점차 발생 빈도가 높아지고 있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특히 최근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묻지마 살인'의 용의자들 대부분이 30대 실직자나 무직자가 대부분이었던 점으로 미뤄 국내외 경기사정과도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만큼 불황이 계속되면 경제 사슬의 하층에서 가장 큰 무게를 느끼는 젊은 일용직과 실직자들의 사회에 대한 반목과 분노가 폭발하고 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경찰 조사에서도 이들은 생활고를 비관한 화풀이 차원에서 범행을 저질렀다고는 하지만 과연 자신의 삶을 포기하면서까지 분노와 화를 표출했어야 하는 절박한 상황이었는지 의구심이 든다. 물론 전문가들은 '묻지마 살인'이 극단적 어려움으로 고립된 상황에 처해 절박한 심정을 어떻게든 표출하려는 행위라고는 하지만 자신이 처한 절박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과연 어떤 노력들을 했는지 되묻고 싶다. 어찌됐든 우리나라의 경우 그동안 '묻지마 살인'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사회적 대책이나 제도적인 개선책 없이 그저 개별적 사건으로 치부하며 이에 대한 깊은 논의나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했던 부분에 대해서는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나 자치단체 차원뿐 아니라 시민단체와도 연계한 네크워크 구성을 통해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도쿄 아키하바라 살인 사건의 경우 사람을 차로 친 뒤 쓰러진 사람을 흉기로 찔렀다는 점에서 불을 지른 뒤 이를 피해 나오는 사람을 흉기로 찌른 논현동 고시원 사건과 너무나 유사하다. 그런 만큼 일본이 아키하바라 살인 사건 이후 가난한 노동자들의 문제를 공론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상담을 받을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는 등 범 정부 차원에서 노력을 기울였던 것에서 그 해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박익조 편집국장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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