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제국의 노을(26)

김문권의 수레는 운강을 거쳐 봉지인 섬서로 들어갔다.

섬서 행정청인 행재소에 들어가 전권을 인수받은 뒤 그들이 연 부임 축하연에 참석했다.

섬서는 동서 만남의 교차지역으로 회흘족들이 많이 살았다.

먼저 섬서 토호이자 지방관인 현령을 맡고 있는 창후가 찾아와 김문권과 다루를 서역관으로 초대했다.

서역관은 창후가 운영하는 주점으로 아담한 무대와 무희와 객석이 있는 분위기 좋은 주점이었다.

창후가 화주와 육포를 권하며 말했다.

“전 서쪽의 회흘(回紇) 출신으로 이곳의 토반입니다. 마침 서역에 오래 사시고 서역 출신의 어부인과 오셨다는 말을 듣고 제가 일부러 이렇게 초대를 했습니다.”

“그렇다면 회교를 믿겠군요.”

그런데 왜 술을 마시며 주점을 운영하는지 의아해하는 눈길을 의식한 듯 창후가 말했다.

“저는 알라신을 믿지만 경건한 회교도는 아니지요. 이런 주점을 운영하며 세속에 젖어 사는 관리이지요.”

“하긴 여기 나의 아내도 세속화된 지 오래요.”

무대에서는 젊고 요염한 아라비아 무희가 아라비아 전통 춤인 밸리댄스를 현란하게 추고 있었다.

“저 여자는 아라비아 여자 같군요.”

다루는 심목고비(深目高鼻)의 무희를 가리키며 말했다.

“다들 그렇게 말하고들 있지만 진짜 아라비아 여자는 아닙니다. 저 무희는 석국(石國·타시켄트)여자지요. 원래는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으나 대역죄에 연루되어 집안이 멸문되자 대식국(아라비아) 대상에게 팔려 파미르를 넘어 왔는데 앞으로 장안까지 흘러 들어가겠지요.”

창후는 별식인 낙타고기를 가져오게 해 김문권과 다루에게 대접하며 말했다.

“자, 낙타고기를 먹어 보십시오. 낙타 넓적다리는 부드럽고 쫀득하면서도 고소한 맛이 나지요.”

“배꼽춤은 모든 춤의 근원이자 모든 춤의 어머니이에요.”

다루는 참으로 오랜만에 고향에서 보았던 무희의 춤을 다시 보며 향수를 느끼며 말했다.

김문권은 장안과 신도와 또 다른 서역 경계지역에서의 활발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저의 고향은 대식의 바그다드입니다. 그곳에 가보셨습니까?”

창후도 향수에 젖은 눈으로 물었다.

김문권은 부드러운 낙타고기를 뜯어 먹으며 말했다.

“그곳에서 한 삼 년 지냈지요. 본래 바그다드란 페르시아어로 신의 선물이란 뜻이지요.”

아바스왕조의 제2대 칼리프인 만수르가 티그리스강 서쪽 연안의 한촌인 바그다드를 이슬람제국의 새 수도로 임명하고 바그다드(신의 선물)이라고 명명한 데서 비롯되었다.

“전 바그다드의 만수르 구역에서 4층짜리 집을 짓고 번듯하게 살았습니다.”

4층짜리 집을 지었으면 네 명의 부인을 거느리고 살았다는 뜻이다. 아랍세계에서는 회교 교주 마호멧의 가르침에 따라 일부다처제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 그래서 첫 부인과 결혼할 때는 1층을 지은 뒤 그 위 집 지붕은 마감을 하지 않은 채 미완성으로 둔다. 장사를 해서 돈을 더 벌어 둘째 부인을 얻으면 이층집을 올려 살림을 내주고, 다음 또 여유가 생기면 셋째 넷째 부인을 얻어 삼사층 집을 짓는다. 오늘날 세계의 문화유산이 된 바그다드와 예맨의 고층집들은 그렇게 해서 올라간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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