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지게
민족 전통의 짐 운반법 싣는 짐에 따라 이름도 제각각

▲ 등짐장수(1936). 제공=히나세정(日生町)
지게는 우리 민족만이 가지고 있는 짐을 나르는 독특한 기구인 것 같다. 오랜 세월 우리 민족의 삶 속에 있어온 지게는 숱한 이야기를 안고 있다.

맹목적인 일을 하는 사람을 두고 ‘거름 지고 장에 간다’는 비유적인 속담도 있고, 사실무근이지만 고려장(高麗葬) 이야기도 있다. 늙고 병든 노부를 지게 위에 태우고 첩첩산중에 져다 지게와 함께 버렸는데, 어린 자식놈이 따라와서 지게는 가져가자고 한다. 이 지게를 무엇에다 쓰려는가 묻자 자식 왈 “아버지도 늙고 병들면 할아버지처럼 져다 버려야 하는데 이 지게가 필요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한다. 이에 충격을 받은 아버지는 다시 노부를 지게에 태우고 돌아왔다는 이야기도 있다.

지게는 무슨 짐을 싣느냐에 따라 지게 이름도 달라진다. 소 먹일 풀을 실으면 ‘꼴지게’, 땔나무를 실으면 ‘나뭇지게’, 보릿단을 실으면 ‘보리지게’, 물장군을 실으면 ‘물지게’ 등등 이름이 붙는다.

지게에다 소금·목기·독 등을 지고 다니면서 장사를 하는 상단을 부상(負商) 또는 ‘등짐장수’이라 하고, 보따리에 금·은·동 제품인 세공품(細工品) 등 비교적 비싼 물건들을 가지고 다니면서 판매하던 상인을 보상(褓商) 또는 ‘봇짐장수’라 하는데, 이를 합쳐서 부르는 이름이 보부상(褓負商)이다.

조선조에 부상(負商)들은 전국적 조직망을 가지게 되는데, 이는 조선 건국에 봉공진충(奉公盡忠)한 대가로 국가의 보호 아래 육성되었다. 그 대신 유사시에는 국가에 동원되어 국가가 요구하는 일정한 일을 수행하기도 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도 식량과 무기를 운반하고 직접 전투에 참가하기도 했다. 전쟁이 끝난 후에 어염(魚鹽)·토기·목기·수철(水鐵, 무쇠)등의 전매권을 부여 받기도 했으나, 조직 밖의 부상도 많았다.

▲ 장세동 동구지역사연구소

등짐장수 중에도 소금장수를 ‘등금장수’라 하는데 비가 오는 날에는 남의 집 처마 밑 신세를 가끔 져야 하고, 끼니때가 되면 아무데서라도 지게를 받쳐두고 손수 밥을 지어서 끼니를 해결해야 했다.

옛날 울산 염포·대도 지역에서 나는 소금은 대부분 배로 실어서 전국 여러 지역으로 판매되기도 했지만, 등금장수의 지게에 짐 지워져 운문재를 넘어 청도로, 소호재·새동골을 넘어서 경주 내남 등지로 운반되어 가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장세동 동구지역사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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