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금강석의 미소(7)

북적거리는 저자 사거리에선 페르시아인 마술사가 입에서 불을 내뿜으며 묘기를 보이고 있었고 유랑극단이 친 가설무대 위에서는 서역 악기에 맞춰 무희들이 춤을 추고 있었다. 골목마다 바가지를 들고 구걸하려는 거지들이 진을 치고 있는가 하면 말을 탄 무후포(武候烋·당의 경찰서) 관원들이 군호를 부르며 순라를 돌고 있었다.

김문권과 여진은 묘옥이 운영하는 지물포로 갔다. 지물포에는 신라 종이 백수지를 사려는 손님들로 북적댔다. 신라 종이는 삼으로 만든 중국 마지(麻紙)와는 달리 닥나무를 재료로 해서 만든 저지(楮紙)라 결이 곱고 질감이 뛰어났다. 특히 신라 백수지는 다듬이질과 표백이 뛰어나 당과 서역에서는 비단종이라고 불리며 그 무게만큼 금을 달아주었다.

“여진, 이런 종이라면 우리 신라에선 창호지로 바르고 휴지로 쓸 만큼 흔하지 않소?”

“그런데 여기선 금값이군요.”

“같은 무게만큼 금으로 달아주는 것이 종이뿐만 아니오.”

“또 뭐가 있나요?”

“신라의 자랑인 인삼이 있소.”

여진은 신라물품이 양주 땅에서 대접받고 고가로 거래되는데 놀라면서도 자부심을 느꼈다. 나라 밖으로 나와서야 비로소 신라가 얼마나 큰 교역대국인지 알게 되었다.

여진은 김문권의 안내로 저잣거리에 나도는 온갖 진귀한 물화들을 구경하며 다녔다. 그 중에서도 염물(念物)이라는 상표를 단 신라물품이 큰 몫을 차지했다. 인삼과 이뇨제인 망소(茫消)와 같은 약초와 약제품, 화장품인 군청(群靑), 소방(蘇芳) 염료, 황금 및 기타 광물, 삽라 등의 식기류, 다양한 의례용구, 모전과 비단과 마포와 저지, 식용품, 피혁제품, 책, 먹, 칠기, 향료 등 수백여 종의 물품이었다.

“굉장하군요!”

여진은 이국적인 거리 풍경에 고개를 돌리기에 바빴다.

“금강산도 식후경인데 요기를 하러 갑시다.”

김문권은 여진을 향강루 대주점으로 안내했다.

양주의 술집거리는 낮에도 홍등을 걸어놓은 색주가와 화려한 간판의 주점들이 즐비했다.

“여기가 향강루요.”

양주의 대표적인 반점인 향강루는 대륙적 규모를 지닌 고루거각이었다. 붉은 융단이 깔린 바닥, 비단보를 덮은 탁자, 흑단목을 사용한 의자와 가구로 장식된 주점 안은 바깥보다 더 화려했다. 무대 위에서는 늘씬한 색목녀(色目女)들이 아라비아 음악에 맞춰 치부만 구술고쟁이로 가린 채 알몸으로 배꼽춤을 추고 있었다.

향강루 주점 안은 손님들로 북적대었다.

시중을 드는 아가씨가 다가와 물었다.

“뭘 드시겠어요?”

그들은 오리찜과 고량주를 시켰다.

“아가씨, 주인장을 좀 뵙고 싶소.”

김문권이 여기에 들른 이유는 향강루의 주인인 묘옥을 만나 ‘동방의 빛’을 되찾는 데 있었다. 물론 신라의 가인인 여진이 여기서 노래를 부를 수 없는지 일자리도 알아보러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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