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울산의 옛길 - 장터 오가고…이웃마을 왕래하고…나뭇짐 나르던…

▲ 동구 옛길(1936). 사진제공=하나세(日生町)
길은 서로 다른 장소를 연결해 주는 통로이다. 길은 오랜 세월동안 만들어 졌다가 사라지기도 했지만, 옛사람들의 삶과 애환이 서린 곳이기도 하다. 울산의 옛길에는 헌강왕이 지나면서 처용설화가 만들어지고, 경순왕과 문수보살에 얽힌 무거·망성·허고개 같은 전설의 길도 있고, 관원들이 드나들던 우역과 원을 잇던 옛길도 있었다. 민초들의 삶과 애환이 겹겹이 쌓인 길, 소를 몰고 등짐을 지고 시장을 다니던 길, 이웃마을을 왕래하고, 나뭇짐을 지고 나르던 재·고갯길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다. 수백 년 전의 길 이름들이 지금도 낯설지 않은 까닭은 무엇일까?

1911년께 채록된 지명 자료집 ‘조선지지자료’ 울산군에 시장 이름이 나타난다. 본부장(울산), 병영장(兵營場), 신리장(內峴·신리), 대현시(峴北·개운), 서생장(西生·성내), 목도장(靑良·사방), 상북장(柳木亭市場), 언양장(邑內市場) 등의 이름들이 보인다. 당시만 해도 시장을 다니던 길은 재(嶺)나 고개(峙)를 넘어 다니던 오솔길이 가장 빠른 지름길이었다.

고갯길을 넘어서면 작은 마을이 있고, 마을 앞에는 주막(酒幕)이 있어 민초들이 쉬어가는 쉼터이자 이정표가 되기도 했다. 일제 강점기 초부터 자동차 도로인 신작로(新作路)를 만들기 시작하는데, 이전에는 혹, 대로가 적군의 침투로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경계심(공포) 때문에 도로 개설을 미뤄왔던 것으로 보인다.

동구에서 울산장을 다니던 고갯길은 범밭재·새밭재·구당재·봉화재·당고개·질마재 등이 있고, 농소의 주요 고갯길은 기백이재(약수)·기남이재(蟹南嶺)·적은달령재(小月嶺)·돌박재·고불고개·신흥재·과부내고개·숯고개·저승재가 있다. 또 강동의 달골재,·가분데고개·왕골재, 양정의 새바대, 연암의 병영재, 범서의 문고개·어사암고개·질매재·서당고개·무릉재·한실재도 있다.

웅촌에는 산티고개·저승재·남악재, 청량에는 솔밭고개·구분등골, 율리에는 개살고개·밤티·오복고개, 온산에는 울벌고개·떡고개·우무정고개가 있다. 여천은 돋치고개, 상개동은 마당재, 세죽은 분답고개, 장현에는 장티가 있다.신정동의 화리고개(弓峴嶺), 옥동의 구실고개(玉峴嶺)·상아고개, 다운동의 원고개도 있다.

▲ 장세동 동구지역사연구소

두동에는 치술령·내리재·남양재·노루목고개, 봉계에는 달봉재, 두서 인보에는 말구부리재, 구량에는 지경고개, 차리에는 다개고개, 내와에는 소호고개·갈밭재, 미호리에는 열박재와 살그내고개, 언양 구수에는 비느티, 반천에는 고무재, 반연에는 개고개, 상북에는 소호재·운문재·석남고개, 가지산에는 구름재, 이천에는 배고개·덕현재·긴등재·왕방재·신불재·금강골재 등이 있다. 이곳에는 마을 앞 주막 이름도, 주막에 얽힌 옛 이야기도 잔잔히 옛 정감을 전해준다.

울산의 옛길, 재를 넘던 고갯길은 기능과 목적은 달라졌지만, 지금은 주요 등산로, 산책로 등으로 변해서 현대인들의 정서적 갈증을 채워주고 있다.

장세동 동구지역사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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