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금강석의 미소(15)

군왕들에게 소황후는 천하와 등가였다. 소황후를 얻는 자는 천하를 얻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렇기에 소황후를 얻기 전까지 맹렬하게 정복활동을 벌였던 뭇 군왕들이 소황후를 얻은 후에는 한결같이 소황후와 둥지를 틀고는 얌전하게 지냈던 것이다.

그렇게 소황후는 수양제에서 당태종에게 이르기까지 여섯 군왕의 품을 전전하며 사랑을 받았다.

김문권은 소황후의 이야기를 묘옥에게 들려주며 용선의 창밖을 바라다 보았다.

“그대는 역사상 가장 매력적인 소황후 이상의 여인이오. 그대와 함께 이렇게 있는 것만으로도 광영이오.”

묘옥은 제왕 이정기의 왕비였고, 황하 이남의 대부호들을 농락할 정도로 매력적인 여인이었다. 하지만 천하의 묘옥도 이력 만으로는 소황후의 문턱도 따라갈 수 없었다.

“소황후의 삶이 반드시 좋은 것일까요?”

묘옥은 용선의 주보에서 양귀비주를 꺼내어 도자병째 들이켜며 자문자답했다.

“여섯 군왕의 아내로 떠도는 것보다 한 남자의 아내로 머무르는 게 훨씬 더 행복할 거야.”

“묘옥, 나도 그렇게 생각하오. 행복이란 물질적 조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 만족에 있는 것이오. 여섯 군왕의 칼끝에서 살았던 소황후는 과연 얼마나 행복했겠소? 차라리 한 지아비와 자식들로 울타리를 쌓고 호미로 김을 매는 아낙이 팔자가 편하지 않겠소?”

“그래요. 저는 그동안 권부의 주변부를 맴돌면서 집도 절도 아닌 어중간한 삶을 살았어요. 그러나 결국 모든 게 한조각 뜬구름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녀는 한숨을 쉬며 도자병에 든 양귀비주를 단숨에 비웠다.

“아, 더워!”

묘옥은 술기운이 올라 더운지 손바닥으로 얼굴을 부채질 하더니 윗옷을 벗었다.

그녀의 뽀얀 젖가슴이 봉긋봉긋 솟아나왔다.

그리고 양귀비주의 강력한 주정과 술기운이 피부 밑에 감춰져 있는 문신 자국과 반응해 붉은 색소를 표피로 밀어 올렸다.

그녀의 왼쪽 봉우리가 금세 발그레해 지더니 빨간 양귀비꽃 한 송이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가슴과 엉덩이와 등에도 붉은 문신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녀의 뺨에 갓 피어난 어여쁜 양귀비꽃의 선연하고 염야한 자태가 너무나 아름다워 김문권은 자기도 모르게 그녀의 뺨에 입술을 갖다대며 접문했다.

“아름답소.”

“무엇이요?”

“황해의 밤과 그대의 몸과 붉은 양귀비꽃 문신 모두가.”

“문권, 이 문신은 처음 보는 거지요?”

“그래요. 전에는 없었잖소?”

“이정기 왕이 새겨준 것이에요.”

“오.”

“그는 전장에선 거친 무골이었지만 침전에선 섬세한 예술가이기도 했지요.”

이정기는 양귀비의 몽실한 두 젖무덤에 문신을 새기기 위해 마비산을 발라 골고루 문질렀다. 마비산의 기운이 양귀비의 두 가슴에 골고루 스며들자 바늘을 꺼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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