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금강석의 미소(17)

묘옥은 김문권에게 취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것 봐요. 권력과 재물은 모두 뜬구름이에요.”

“남는 건 예술이오.”

“예술?”

“그렇소. 나도 온 세계를 다니며 명예와 부귀를 추구해 보았지만 허망하기 짝이 없었소. 그동안 내가 추구한 것이 석굴암의 돌 한 짝보다 쓸모가 없었던 거요.”

“그럼, 난 앞으로 어떡해요?”

“신라 땅에서 함께 삽시다. 어쩌면 그곳에서 우리의 아이를 낳을 수도 있을 거요.”

“이 나이에 가능할까요?”

“가능하고 말고요. 딸을 낳고 싶소. 소황후와 양귀비보다 더 아름다운 당신을 닮은 딸을.”

김문권은 가슴과 엉덩이에 붉은 빛이 낭자하게 흐르는 묘옥의 몸을 애무하며 환상의 세계로 빠져 들어갔다.

용선은 어느덧 황해를 지나 일본의 나니와에 도착했다.

김문권과 묘옥은 나니와에서 나라로 들어가 김암과 장쇠를 만났다.

김암과 장쇠는 김문권의 일로 일본에 건너와 거의 일본인이나 다름없는 정착한 도래인이 되었다.

김암의 경우, 그의 재능을 높이 산 일본 여천황 효겸이 천문박사의 관직을 주고 억류한 경우이고, 장쇠는 가야철 무역을 하면서 돈을 벌어 주저앉은 경우이다.

김문권과 김암은 만나자마자 서로 목을 껴안고 반가워했다.

“벗이여, 정말 반갑네.”

“이렇게 다시 만나다니 꿈인가, 생시인가.”

김문권은 김유신의 증손자답게 당당한 풍채에다 늠름한 기품이 서린 왕골(王骨)이었다. 당나라 국자감에서 숙위로서 사서오경을 통달했을 뿐만 아니라 종남산 은현재에서 병법, 천문, 점복, 둔갑, 은형, 음양학에도 깊이 공부했다. 특히 여천황 효겸(고켄)은 그의 점성술을 높이 사 미개한 왜인들에게 별자리 보는 법을 가르치게 했다. 김암은 밤하늘을 3원(垣) 28수(宿)로 나누어 별자리를 체계적으로 관찰했고, 그것을 바탕으로 점성학에 관한 책을 쓰기도 했다.

김암이 김문권에게 말했다.

“내가 꼭 소개해 줄 사람이 있네.”

“누군가?”

“내 아내와 장모님이시네.”

김암의 말에 김문권의 머리가 복잡해졌다. 결국 김암은 신라의 연생이를 버리고 새장가를 들었군. 하긴 그도 어쩔 수 없었을 거야.

김암이 데리고 온 사람은 뜻밖에도 연생이와 어머니 부여부인이었다.

“신라를 오가는 장쇠를 통해 아내와 장모님을 모시고 왔네.”

“잘했군. 나는 토함산 석굴암에 산다고 미처 챙기질 못 했는데 정말 잘 했어.”

그들이 해후의 기쁨을 만끽하며 서로 얼싸안은 뒤 김문권이 김암에게 뚜벅 말했다.

“김암, 내가 일본에 온 것은 금강석 ‘동방의 빛’을 찾으러 왔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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