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금강석의 미소(22)

석굴암 백호광명 봉안식이 정해졌다. 손 없는 윤달 초하루에 하기로 하고 김문권의 이름으로 왕실과 사찰에 초대장을 보냈다.

모두들 흔쾌히 초대에 응했다. 하지만 신라의 왕은 석굴암 초대에 응하는 대신 김문권을 사정부로 소환했다.

“그대가 동방의 빛을 석굴암 본존불에 봉안한다고 하였는가?”

“그러하옵니다.”

“동방의 빛이란 금강석을 어떻게 입수하였는가?”

“예. 원래는 혜초 스님이 소지하고 있던 것을 김문권 공장이 물려받아 지니고 있다가 귀국하는 도중, 평소에 은혜를 지고 있던 중국 양주땅의 묘옥에게 주었습니다. 묘옥은 이것을 일본 상인에게 팔았고, 이 상인은 주군인 모노노베에게 바쳤습니다.”

“그래서?”

“저와 묘옥은 일본에 가서 모노노베로부터 금강석을 빼앗아 온 것입니다.”

김문권은 사실대로 이실직고했다.

“짐이 지금 그 동방의 빛을 볼 수 있겠는가?”

“지금 소인이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럼, 누가 가지고 있는가?”

“어느 누구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이것은 부처님의 것입니다. 한번 불면 근심스런 세상이 평화로워 진다는 만파식적처럼 이 동방의 빛도 특정개인의 소유가 아니라 천하공물로 돌리기 위해 잠시 세상에서 모습을 감추고 있습니다.”

“고이얀! 왕이 국가니라. 그러므로 왕이 지닌 것은 모두 천하공물이다. 그러기에 백성이 가진 땅도 모두 왕토가 아니더냐. 어서 썩 내놓지 못하겠느냐?”

동방의 빛을 소유해 천하에 위엄을 떨치고 싶었던 왕은 뜻을 이루지 못하자 떡 하나를 더 가지려고 징징대는 어린애처럼 소아적 속성을 드러내었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이것 만은 아니 되옵니다.”

김문권은 목에 부목을 댄 듯 빳빳하게 거절했다.

그러자 대노한 왕은 사정부령과 낭중에게 명령했다.

“이 대역죄인 김문권의 몸과 집을 철저히 수색해서 동방의 빛을 찾아라. 그리고 찾지 못할시 찾을 때까지 이 놈을 궁궐 뇌옥에 하옥하라!”

김문권은 다시 깊은 어둠 속으로 하강했다. 도대체 몇 번이나 이 뇌옥에 갇히게 되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권력의 터럭에 한 오라기라도 거슬르기만 한다면 곧바로 반역의 낙인이 찍혀 이곳으로 하강했다.

주리를 틀린 허벅지와 압슬을 당한 무릎이 지금도 날카로운 얼음이 박힌 듯 시큰거린다.

그러나 끝내 동방의 빛 소재를 말하지 않은 것이 흐뭇했다.

‘이건 개인의 소유가 아니라 반드시 부처님의 백호광명으로 회향되어야 한다.’

김문권이 부얼거리며 뇌옥의 기둥을 붙잡고 흐느적거리고 있을 때 형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역적죄인 김문권 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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