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동축사 - 신라 24대 진흥왕때 축조 삼국유사에도 창건설화 전해져

▲ 동축사(1936) 히나세 제공
울산에도 신라의 고찰들이 많이 있었다. 운흥사는 26대 진평왕 때 원효대사가, 태화사는 27대 선덕여왕 때(643년) 자장율사가, 간월사는 28대 진덕여왕 때 자장율사가 창건했다. 축선사는 삼국통일 직후 김유신 장군이, 영축사는 신문왕 3년에 창건했으며, 청송사는 통일신라 후기로 추정된다. 오랜 세월 병란의 참화와 자연 소실로 인해 그 명성만 높이 전해져 오고 있다.

그 역사의 무게를 고스란이 버티어 온 동축사(東竺寺)는 24대 진흥왕이 창건했고, 신흥사(新興寺)는 27대 선덕여왕 때 명랑조사가 창건했다. 석남사(石南寺)는 41대 헌덕왕 4년 도의국사가 창건하고 월봉사(月峰寺)는 경순왕 4년에 성도율사가, 처용설화가 있는 망해사(望海寺), 일명 신방사(新房寺)는 49대 헌강왕 때 창건하여 중창을 거듭하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그 중에서도 동구 남목에 있는 동축사의 창건설화가 가장 오래된 것으로, 삼국유사에 전해져 온다.

‘황룡사 장육(丈六)’조에 신라 진흥왕 24년(573) 3월 하곡현 사포(絲浦)에 큰 배가 닿았다. 현리(縣吏)가 조사해 보니, 서축국(西竺國: 인도) 아육왕이 황철 5만7000근, 황금 3만푼과 첩문을 실어 보냈다. 첩문에는…아육왕(아쇼카)이 천하를 평정한 뒤 불문에 귀의하여 참회의 뜻으로 팔만사천의 대보탑을 세우는 등 대

작불사를 하고, 불상을 조성하려 하였으나 세 번이나 실패하였다. 왕은 인연이 없음을 깨닫고 황철과 황금과 일불이보살상(一佛二菩薩像)을 배에 실어 바다에 띄우고 인연이 있는 나라에 가서 불사가 이루어지길 빌었다. 이 배는 1300년 동안 16 대국, 500 중국, 7000 소국, 1만 부락을 거쳐 마지막으로 당도한 곳이 하곡현 사포(絲浦)이다. 이를 보고받은 진흥왕은 황철과 황금은 서라벌로 운반하여 문잉림(文仍林)에서 주조하여 불상을 완성하고…이 고을 동쪽의 높고 깨끗한 땅을 골라 동축사(東竺寺)를 짓게 하였다. 이듬해 불상이 발꿈치에 닿도록 눈물이 흘러 바닥이 1척이나 젖었는데, 이는 대왕이 승하할 조짐이었다.

장세동 동구지역사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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