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금강석의 미소(24)

사정부령이 왕에게 간했다.

“차라리 호랑이 새끼를 풀어 어미 호랑이를 잡읍시다.”

“그게 무슨 말인가.”

“김문권의 고집을 보아하니 놈을 윽박질러 금강석을 찾기는 틀린 듯합니다. 그러니 아예 놈을 풀어주어 백호광명 봉안식을 거행하게 한 뒤 본존불의 이마에서 금강석을 빼오면 간단하지 않습니까?”

“오호. 그런 쉬운 방법이 있다는 걸 왜 미처 생각하지 못했을까.”

왕과 사정부령은 김문권을 당석에서 석방하여 석굴암 본존불 백호광명 봉안식을 계획대로 거행하게 했다.

뇌옥으로부터 석방된 김문권은 서역 출신의 혜장 스님과 함께 토함산에 올랐다.

“혜장 스님, 당신은 완성된 석굴암을 최초로 참배하는 외국인이 될 겁니다.”

“그것도 의미가 있군요. 참, 제가 중국에서 오면서 김문권님에게 드릴 혜초 스님의 책을 가지고 왔습니다.”

혜장은 바랑에서 두꺼운 책 한 권을 꺼내었다.

“아, 이건 낙양의 지가를 올린 그 유명한 왕오천축국전이군요.”

“맞습니다. 하지만 이 책은 좀 특별합니다.”

“왜죠?”

“시중에 나돈 약본(略本)이 아니라 원본입니다. 스승님 곁에서 상좌인 제가 직접 필사를 했지요.”

“오. 그렇다면 소략하게 기록된 서역의 풍속과 문화에 관한 기록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겠군요.”

“그렇지요.”

약본 왕오천축국전에도 여러가지 흥미로운 기록이 있다. 어느 지역 사찰에는 대·소승(大·小乘)이 구행(俱行)하고 있으나 곳에 따라 대승만 행하는 곳도 있고, 소승만 행하는 곳도 있으며, 북방에는 사원과 승려 및 신자가 많아서 조사설재(造寺設齋)할 때에는 아내와 코끼리까지 바치는 독실한 불자도 있다고 했다. 나체 생활의 풍속, 여러 형제가 한 사람의 아내와 같이 사는 것 등의 색다른 풍습이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대체로 나라마다 간결한 서술로 소략하게 표현해 아쉬운 점이 있었다.

“그런데 여기 원본 왕오천축국전에는 약본에 없는 흥미로운 기록이 있지요.”

“그게 뭡니까?”

“바로 혜초 스님이 대식국에서 획득한 금강석 ‘동방의 빛’에 관한 기록이지요.”

“그게 바로 어금록이라는 책 아니었습니까?”

“어금록이 바로 여기서 나온 것입니다. 스승님은 20년 전 이 책을 기록할 때 벌써 ‘동방의 빛’이 해가 뜨는 부상(扶桑)의 나라 신라의 한 사찰에 백호광명으로 빛나야 할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김문권과 혜장은 서로 얘기를 하면서 마침내 토함산 석굴암에 도달했다.

혜장은 석굴암에 들어가 전방후원의 엄정한 구조와 생동감 넘치는 장엄한 석상들을 둘러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특히 주실의 본존불과 구형 공간을 보고선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돈황 막고굴과 천불동에서 혜초와 함께 수 년을 있었던 그가 말했다.

“정말 장관이군요. 마치 연화정토에 온 기분입니다. 돈황과 대동, 용문에만 수천 개의 석굴이 있지만 부처님의 세계를 이만큼 응축적으로 보여주는 곳을 보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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