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해초 따는 아낙네
갯바위 돌김·바닷말·조개류 등 캐내 내다팔아

▲ 해초 따는 아낙네, 1936 히나세 제공
바다와 접해있는 내륙에는 농토가 부족한 탓도 있지만, 그 중에도 자경 농지가 적은 빈농의 아낙들은 식구들의 호구지책을 바다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 자연스럽게 파도가 날라다 주는 해조류(海藻類), 겨울 갯바위에서 자라는 자연산 돌김, 식용의 여러 바닷말과 조개류 등을 채취해 내다파는 일은 바다가 주는 혜택이었다.

197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마을 골목길 담장 아래나 울타리 밑에는 김을 가지런히 붙인 김발이 줄을 지어 서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집집마다 김발은 수 십장씩 업담밑(토담집 좌우측 농기구 등을 놓아두는 곳)에 쌓아 두었는데, 야산에서 띠(茅·모)를 베어다가 그늘에서 잘 말린 다음 실(시울)로 엮어서 만든다.

돌김은 파도가 크게 일고 나면 큰 갯바위 위에 붙어 자라는데, 와이어나 가늘고 단단한 소나무뿌리로 만든 빗솔로 긁어서 채취했다. 갯바위에는 작은 고동과 따개비 등도 기어 오르는데 이것 역시 주워다가 반찬을 해먹기도 했다.

어느날 모씨네 집 며느리가 등대(지금의 대왕암) 쪽에 김을 따러(채취) 갔다가 따개비를 덤으로 조금 따와서 시아버지 상에 반찬을 만들어 밥상에 올려 드렸더니 찬이 없던 그 시절에야 별미로 얼마나 맛있게 드셨던지

▲ 장세동 동구지역사연구소장

그 다음날 아침 며느리에게 “등대 돌 따개비 사정(봐)주지 말고 따오너라”며 며느리에게 고마움을 전했단다.

시아버지의 감사하는 마음을 전해받은 며느리는 오히려 송구스럽게 여겨 그 다음날은 더 많이 따다가 맛있게 따개비 찜을 끓여 드렸더니, 시아버지는 연거푸 몇 그릇을 맛있게 드시고는 그날 밤 배탈이 나서 밤새 화장실을 수도 없이 드나들면서 얼마나 고생을 했던지 다음날 며느리에게 “등대 돌 따개비, 본동만동(본척만척)해라”라고 했다는 재미있는 일화가 전해져 온다. 당시의 화장실은 재래식으로 주로 집의 바깥이나 집의 한 모퉁이에 있었으니 엄동설한의 추운 겨울밤이 또 얼마나 길었을까.

장세동 동구지역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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