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강> 울산지역 시민 인문강좌는 왜 하는가?

일상 속 여러 가치관 깨닫는 즐거움이 인문학의 지향점
이익 추구하는 도구인 지식·정보가 아닌 지혜 전달 추구
학문이라는 좁은 울타리 벗어나 시민과의 소통 시도
올해부터 본보를 통해 지상 인문학 강좌가 시행되고 있다. 울산대학교 교수들이 주축이 되어 시민들과 만나게 될 인문강좌는 왜 하는가. 오늘 강의는 시민 인문강좌의 필요성과 그 의의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인문학 강좌가 필요한 이유는 첫째로 세상을 달리 보기 위해서이다.

무지개의 색은 몇 개일까? 물론 일곱 개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태양의 빛을 처음 7색으로 분리한 사람은 뉴턴이다. 성스러운 숫자 7에 맞추기 위해서라는데, 그래서 미국이나 영국도 학술적으로는 무지개 색을 7색으로 정의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과 영국의 아이들은 무지개를 그리라고 하면 6색으로 그린다. 한편 독일과 중국의 한족, 시베리아 솔론족, 멕시코 마야족 등은 5색 무지개를 그리는가 하면 이슬람권에서는 ‘빨노초푸’의 4색 무지개를 그리고, 3색으로 그리는 아프리카의 부족도 있다.

여기서 우리가 느끼는 것은 우리가 인식하는 세상은 통념으로 받아들이는 것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깨달음이다.

둘째, 한 개가 아닌 여러 개의 가치관을 느끼기 위해서다.

관중들이 많이 찾는 유럽의 프로축구와 달리 우리나라의 프로축구가 그다지 활성화되지 못한 이유가 무엇일까. 유럽의 안을 들여다 보면 각기 다른 지방은 ‘다른 나라’라고 볼 수 있을 정도로 서로 차이가 많이 나고 또 그런 차이를 서로 인정하고 있다.

가령 잉글랜드·웨일즈·스코틀랜드·아일랜드로 되어 있는 영국의 각 지방은 서로를 거의 다른 나라로 보고 있고 스페인의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는 적국과도 같은 앙숙의 관계이기 때문에 프로축구 경기가 인기가 많다. 그러니 그 도시가 그 도시인 우리나라 도시 연고팀들의 경기가 많은 관심을 얻기를 기대하는 것은 힘들 수 밖에 없다. 이 순간 우리는 한민족, 한나라라는 생각이 어떤 경우에는 걸림돌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흔히 ‘같은 것’은 ‘좋은 것’이고 ‘다른 것’은 ‘좋지 않은 것’, 그래서 ‘틀린 것’이라고 생각하는 버릇이 있다. 이런 선입견에서 나온, 집단 전체와 다른 의견은 무조건 타깃처럼 삼는 통념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충분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우리의 삶이 힘든 것은 모두가 같은 목표를 향하고 있기에 빚어지는 경쟁관계 때문이다. 같다는 것이 좋은 것만이 아니다. 말하자면 세상을 인간답게 살아가는 데에는 한 가지 길, 한 가지 가치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개의 길과 가치관이 있을 수 있다는 것만 깨달아도 우리의 삶은 보다 더 밝아질 수 있을 것이다.

셋째로는 깨달음을 통한 밝은 삶을 위해서이다.

깨달음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시민 인문강좌의 의의가 있다. 평범한 시민들이 자신의 일상에 들어있는 여러 인간적 가치관을 느끼고 깨닫는 즐거움을 맛보는 것이야말로 인문학이 지향하는 목표이기도 하다.

부와 권력과 명예라는 통념적인 가치 만을 좇는 삶은 인간 본성을 살리는 삶이 아니라 인간 본성을 죽이는 삶이기에, 물질의 풍요 만을 추종하는 삶은 갈수록 팍팍해져 갈 수 밖에 없다. 인간 본성에 대한 목마름이 더 커져가는 오늘날의 현실은 바로 인문학이 절실히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시민 인문강좌의 필요성과 의의는 학문의 역할을 되돌아보는 뒤늦은 자성에서도 나오고 있다. 시민과의 소통은 외면한 채 개별 학문의 영역이라는 좁은 울타리 안에서만 통용되는 학문은 열린 학문이기 보다는 자기영역 안에서 되새김질만 하고 있는 자폐증 학문이었다는 점에서, 한편으로는 인문학의 위기는 학자들이 자초한 면도 없지 않았다. 자폐증에서 벗어나 시민과 호흡하는 인문학으로 나아가는 것은 그러므로 학문의 이런 자각에서 출발하고 있다.

그 다음으로는 지식이나 정보가 아니라 지혜를 얻기 위해서이다.

지식이나 정보는 ‘지적소유권’이라는 표현에서 엿볼 수 있듯이, 또 하나의 권력이다. 지식과 정보는 남보다 나의 이익을 우선하는 도구이다. 정보가 제시하는 ‘새로운 것’보다는 우리를 더 편안하고 밝은 행복으로 이끄는 것은 ‘오래가는 무엇’이며, 이런 깨달음이 바로 지혜이다. 이런 의미에서 인문학은 정보가 아니라 지혜를 찾는 길이며, 이런 점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성급한 해답을 구하는 것보다는 끊임없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왜?’, ‘어떻게?’ 라는 질문이야말로 인간다운 삶의 출발점이고 인문학의 본령이다.

하지만 우리의 일상은 반성(反省)이 아닌 즉물적인 반응(反應) 만을 요구하고 있다. 사회통념은 인간 본성에서 나오는 반성과 질문 마저 효능성과 경쟁력의 저해요소로만 보고 있다.

인간 사회는 개인들의 단순한 집합체가 아니다. 모두가 모두에게 연결되어 있는 ‘상호의존의 유기체’인 ‘공동체(커뮤니티)’인 것이다. 부분과 전체는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개인이나 집단도 하나이며 너와 나도 공동운명체라는 생각을 널리 공유할 때 우리의 삶은 그야말로 인간의 향취가 나는 삶이 될 것이다. 이를 위해 우리 스스로에 대해 조금은 진지한 생각을 나누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도 시민 인문강좌의 또 하나의 역할이다.

다섯번째로 ‘환대’와 ‘배려’의 정신을 위해서이다.

▲ 김진식 울산대 프랑스학과 교수 울산시민인문강좌운영위원장

시민 인문강좌는 한편으로는 수강생들의 자긍심 회복을 통한 주체화 과정인 동시에 수강생들 상호간의 상호 의존성을 확인하면서 물질과 경쟁 만이 날뛰고 있는 현실 속에서 상호간에 ‘환대’와 ‘배려’의 정신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김진식 울산대 프랑스학과 교수 울산시민인문강좌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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