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착호비(捉虎碑)

목장 있던 남목 불당골, 착호비등 유적 특히 많아

▲ 동구 남목동 착호비
경인(庚寅)년 범띠 새해에는 호랑이에 얽힌 이야기들이 재미있게 각색돼 되살아나고 있다. 동구 남목의 불당골 뒷산에 호랑이를 잡은 공적으로 가선대부(嘉善大夫)의 직에 가자되었던 전후장(全厚章) 공의 묘가 있다. 영조 22년(1746년)에 호랑이 5마리를 잡은 공으로 절충(折衝)의 작위가 가자되고, 영조 33년에도 호랑이를 잡아 가선대부(嘉善大夫)의 직이 내려졌다. 이 비석을 후세 사람들은 착호비(捉虎碑)라 부르고 있다. 울산의 남목은 조선조에 줄곧 병마를 기르던 목장인데, 먹거리가 풍부한 탓인지 호랑이가 많이 서식했다.

호랑이 이야기는 민담으로도 많이 전해져 오는데, 호랑이는 공포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옛사람들에게는 신령한 영물(靈物)로 비쳐졌던 모양이다.

일제 말기 쯤의 이야기다. 남목에서 태어나고 자랐던 한 자매가 결혼 후에 동생은 명덕골에, 언니는 일산동 번덕으로 시집을 가 살고 있었다. 여느 해처럼 봄이면 어릴 때 자랐던 산천이 그리워서 나물 바구니를 옆에 끼고 두 자매가 나란히 남목 뒷산 범무골로 산나물을 캐러 갔다.

계곡과 산등을 넘어 바위 아래까지 왔을 쯤, 동생이 뒤따르던 언니에게 ‘언니야! 예쁜 괴내기(고양이) 새끼가 있다’면서 호랑이 새끼를 들고 입을 맞추며 품에 안고 얼려보기도 했다. 뒤따르던 언니가 고개를 들어보니, 바위 위에 어미 호랑이가 앉아서 그 광경을 내려다 보고 있지 않은가. ‘동생아! 괴내기 새끼가 아니다. 놔두고 빨리 내려오너라’ 언니는 놀라서 말소리 조차 크게 나오지도 않았다.

이때 바위에 앉았던 호랑이가 앞발로 바위를 슬쩍 긁자 끄르륵 소리와 함께 돌가루가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동생이 위를 쳐다보고는 놀라서 호랑이 새끼를 조용히 내려두고는 신발도 바구니도 다 버려두고 그 길로 산을 내려 왔다. 혼이 빠져나간 사람처럼 한동안 어떻게 걸어왔는지 조차 모르게 그 골짜기를 벗어나고 각자 집으로 와서는 앓아눕게 되었다.

그런데 이튿날 동생네 사립문 앞에 나물 바구니와 칼, 신발이 놓여 있지 않은가! 누가 이것을 가져다 놓았을까. 궁금하기도 해서 언니네 집에도 가져다 놓았는지 확인하려고 딸을 언니네 집에 보냈더니 언니네 집에도 모두 다 돌아와 있었단다. 지금도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라며 어릴 적 이모네 집에 심부름 갔던 회고담을 임월순(72)씨가 전해준다.

동구지역사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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