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강> 글쓰기가 준 소통의 즐거움

‘희망대학’ 글쓰기 강의 수강 한부모가정 여성 가장들
연극·영화 감상문 등 쓰며 서로의 삶과 생각 나눠
누군가의 글 속에서 자신의 모습 발견하며 공감 느껴
▲ 영화 ‘후라이드 그린 토마토’의 한 장면.
지난해 봄, 10주 동안 ‘희망대학’ 강의를 맡았다. ‘글쓰기’를 주제로 진행된 강의였는데, 10주라는 시간 동안 영화와 연극 감상문 쓰기, 시와 수필 감상문 쓰기, ‘나의 10년 후의 모습’에 대해 쓰기, 일기 쓰기 등을 하면서 함께 자신의 글을 읽고 서로 서로의 생각을 나누었다.

수강생들은 처음에 모두 ‘글쓰기’를 어려워 했다. 어찌 보면 우리는 초등학교 때부터 오랫동안 글을 써 왔지만, ‘일기 쓰기’ 조차도 항상 어렵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학교 다니면서 독서 감상문 쓰느라 고생했던 기억과, 방학이 끝날 즈음 똑같은 형식의 밀린 일기를 정신 없이 써대느라 힘들었던 기억을 떠올려 보면, 더더욱 글쓰기는 기피의 대상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이런 상태는 더욱 심해진다. 억지 글쓰기에 익숙해져 있는, 그래서 글쓰기의 재미를, 글쓰기의 의미를, 글을 쓰면서 내 생각이 깊어지고 넓어지는 즐거움을 전혀 느껴본 적이 없는 우리에게는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글쓰기는 점점 더 자신의 생활과는 멀어지게 된다. 수강생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학교를 졸업한 후, 일기조차도 써본 사람이 거의 없었다.

사실 이런 일반적인 사실 뿐 아니라, 늘 삶에 지쳐 있는 이들이 글을 쓴다는 것은 더더욱 힘든 일이었다. ‘희망대학’의 수강생들은 남편과 이혼하거나 사별하여 ‘한부모’로서 가정을 책임져야 하는 여성들이었다. 이들은 드라마에서 나오는 것처럼 돈 많고 능력 있고 세련된 이혼녀들이 아니었고, 대부분 기초생활 수급자로서 하루 종일 땀흘려 일해야 하는 노동자들이었다. 또한 저녁에는 집안 살림을 도맡아야 하는 주부이자, 아이들을 돌봐야 하는 엄마들이었다.

정말 먹고 살기에도 너무나 바쁜 사람들이었다. 게다가 그 먹고 사는 일을 ‘혼자서’ 감당해야 하는 사람들이었다. 수강생 한 명이 자신의 글에 썼던 것처럼, 그들은 정말 늘 ‘하루치의 삶에 지친’ 상태였다. 비루한 일상에 쫓기는 것의 피곤함은 매일 매일 이들을 짓눌렀다. 이런 그들에게 어쩌면 ‘글쓰기’는 사치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들은 매주 수요일 저녁 수업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수업에 늦지 않기 위해서 있는 힘을 다했고, 너무나 적극적으로 수업에 임했다. 수업시간의 그들은 너무나 밝았고 열정적이었다. 오랜만에 써 보는 글들이 힘들었을텐데도 항상 기쁜 낯이었다. 왜 였을까. 이들을 그 힘들고 어려운 ‘글쓰기’로 이끄는 힘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가르치는 내게 오히려 큰 격려를 주었던 그 힘은 무엇이었을까.

수업시간에 함께 시를 읽고 느낀 점을 글로 써보고 서로의 생각을 나누어 본 적이 있다. 그때 우리가 모두 깊이 공감했던 시가 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 정호승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그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그루 나무의 그늘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햇빛도 그늘이 있어야 맑고 눈이 부시다
(중략)
나는 눈물이 없는 사람을 사랑
하지 않는다
나는 눈물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방울 눈물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기쁨도 눈물이 없으면 기쁨이 아니다
사랑도 눈물이 없는 사랑이 어디 있는가
나무 그늘에 앉아
다른 사람의 눈물을 닦아 주는 사람의 모습은
그 얼마나 고요한 아름다움인가

실제로 이들은 대부분 삶에서 많은 아픔을 겪었고, 따라서 상처도 많았다. 그 구구절절한 가슴 아픈 사연들. 그러나 이 시를 읽고 서로의 삶을 나누면서, ‘그늘’과 ‘눈물’로 표현할 수 있는 그들의 삶이 자기 혼자 만의 것이 아니라 거기에 모인 모두의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고, 서로를 더 이해하고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의 ‘그늘’과 ‘눈물’이 또 다른 사람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다는 사실을, ‘눈물’을 흘려야만 진정한 ‘기쁨’과 ‘사랑’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을 서로에게 상기시키면서 서로 격려 받을 수 있었다.

늘 어렵게만 보이던 시를 매개로 서로의 생각과 삶을 함께 나눌 수 있었던 그 소통의 즐거움. 함께 시를 읽었던 기억을 예로 들었지만, ‘후라이드 그린 토마토’라는 영화 속 ‘여자들 사이의 우정’을 이야기하면서, 변현주의 1인극 공연을 보고 ‘내 어머니가 살아온 삶’을 이야기하면서, ‘나의 10년 후의 모습’ 속에 담긴 소박한 꿈들을 이야기하면서 우리가 나눈 가슴 찡하면서도 즐거웠던 시간들. 이야말로 누군가의 이야기가, 그리고 나의 이야기가, 친구의 이야기가 주는 기쁨이 아니었을까. 또한, 이렇게 이야기를 통해 소통할 수 있는 친구가 주는 기쁨이 아니었을까. 이야말로 이들을 그 힘들고 어려운 글쓰기로 이끌어낸 진정한 힘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해 본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글쓰기가 주는 소통의 즐거움일 것이다.
김윤정 울산대 국어국문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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