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이희섭 사진작가

▲ 이희섭 사진작가
필자를 소개한 이상렬 화가의 말마따나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지만 공개된 지면을 통해 칭찬을 받는다는 게 여간 쑥스럽고 멋쩍은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도 본인 스스로 예술활동을 돌아보는 계기가 됐고 비평보다는 비난에 가까운 소리들이 난무한 이 문화판에서 보다 긍정적인 소통의 기회가 될 것이라는 생각에 이 릴레이를 기획한 관계자에게 먼저 박수를 보낸다.

자, 이제 필자가 이번 릴레이를 이어갈 차례다. 보통 칭찬이라 함은 손윗사람이 손아래 사람에게 함이 여러모로 좋을듯 하다. 큰형님뻘 되는 분을 칭찬한다는 게 사실 결례인 듯도 했지만 처음부터 망설임 없이 떠오른 분이 이희섭 사진작가다.

그를 처음 만난 지난 2002년 봄의 기억으로 돌아가 본다. 필자는 바로 전 해 겨울 갑작스레 돌아가신 아버님의 부재와 곧 사십을 앞둔 나이에 이것저것 정신적·육체적으로 무척 힘겨운 시절을 보내던 시기였다. 그때는 지금의 음악활동이 아닌, 인터넷과 멀티미디어와 관련된 일을 하고 있었다. 가까운 지인에게서 자신과 친한 사진작가가 곧 전시회가 있다며 인터넷을 통한 동영상 홍보를 위해 영상 촬영과 편집을 부탁한다는 제의가 왔다. 영상은 전문분야는 아니었지만 가까운 지인의 부탁이었고, 그 무렵 한창 사진에 흥미를 갖고 있던 시기였기에 사진작가에 대한 호기심도 생겨서 간단한 장비를 챙겨 그의 작업실이 있다는 웅촌으로 향했다.

누구든 카메라를 들이대면 당연히 긴장하게 되고, 그 현장의 어색함 때문에 자신의 얘기를 한다는 게 그리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도 막상 촬영에 들어가니 준비된 대본 하나 없이 막힘 없이 줄줄 나오는 것이었다. 거기에 촬영하던 필자마저 푹 빠지게 만드는 작가의 사진세계…. 반나절은 족히 걸릴 것 같은 촬영은 채 한 시간이 지나지 않아 끝났고, 식사나 하자기에 같이 따라 나섰다. 울산 시내에서 웅촌까지는 짧은 거리가 아니었고 상업적으로 작업하는 이들에게 맡겼을 경우 비용을 생각하니 식사 한 끼는 제대로 대접받을 것이라 생각하고 따라 나섰다. 그런데 이것 참! 웅촌에서 그리 멀지않은 서창시장 안의 허름한 국밥집이 아닌가. 내심 기분이 상했지만 그냥 표정관리까지 해가면서 심기 불편한 상태로 국밥 한 그릇 먹었는데, 그 국밥 한 그릇이 내 생의 경로를 바꿔놓을 줄이야.

땡초를 듬뿍 넣은 국밥 한 그릇에 소주 몇 잔 주고 받으면서 불편했던 기분이 사라진 건 그 자리에 함께 있었던 그를 소개한 지인과의 대화에서였다. 3500원 하는 국밥에 소주 한 잔을 걸치면서 어찌 그리도 행복을, 또 해피하다를 얘기하는지. 그냥 말로만의 행복과 해피가 아니라 내 몸으로까지 전해져 오는 그 행복감…. 그 느낌을 좀 과장되게 얘기한다면 머리칼이 쭈뼛 솟아오르는 충격이라고 할까. 일 년에 한 번 전시회를 여는 작가의 수입이라는 게 전시회를 통해 작품을 파는 게 다니까. 전시회를 통해 파는 작품이 이백만 원 밖에는 안된다. 그래서 자신의 연봉은 이백이라 외치는 그 가난한 사진작가의 3500원짜리 국밥과 함께 걸치는 소주 몇 잔의 그 행복…. 십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그날 서창시장의 국밥집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련해진다.

또 그 다음해 열렸던 여섯 번째 개인전.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를 먼 곳에서 바라보며 필름에 담았다던 ‘마·추·피·추’에서는 작품은 말할 것도 없고 저 작품들을 위해 얼마나 많은 발품을 팔며 담아냈을까. 필자로서는 상상도 하지 못할, 애지간한 수식어로는 감당되지 않은 그만의 열정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필자가 느꼈던 그 감동을 비록 전시공간을 통해서는 아니지만 아쉬우나마 그의 홈페이지 하해 이희섭의 사진(www.photo21.or.kr)을 통해 볼 수 있으니 독자들이 꼭 한 번 들러보실 것을 권해본다.

사진작가 이희섭의 작품세계와 삶, 그리고 철학. 그것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막 사십을 앞둔 필자에게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에 대한 삶의 방향 제시와도 같은 것이었다. 물질만능 시대에 예술가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일인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진정으로 작

▲ 박제광 시노래패 울림 대표

은 것에 감사할 줄 알고 적당히 타협하지 않고 자신만의 세계를 지켜감으로써 다른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고 힘이 되어줄 수 있다면 진정 살아있는 예술이 아닐는지.

그와의 만남 이후 필자 개인적으로는 이제 반쯤 돌아온 생애에 가장 하고 싶었고, 또 앞으로 해야 할 일들에 대한 진지하고 긴 고민이 있었다. 그해 겨울 울산에서의 첫 개인공연을 시작으로 지금의 ‘시노래패 울림’과 ‘노래하는 아이들 뚜버기’로 이어져 오고 있다. 그가 내게 준 삶의 위안과 그를 통해 배운 진정한 행복의 마법을 또 다른 누군가가 잇기를 바라면서….

박제광 시노래패 울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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