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계적 문화환경 접근의 결실

공업도시서 문화도시로 변신

▲ 임치원 울산시립예술단 사무국장
문화가 삶의 기반이 되고 도시의 중심 기능이 되어 우리뿐만 아니라 우리의 자손들이 살고 싶어 하는 도시, 문화도시를 ‘무엇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문화도시를 만들고자 한다면 도시 문화정책이 무엇이고, 그 구체적인 실현을 위한 매핑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밑그림이 있어야 한다.

그 좋은 예가 스페인 바스크 지역의 빌바오(Bilbao)시의 문화정책이다. 빌바오는 현재 문화를 통한 도시 마케팅의 대표적 사례로 알려져 있는 지역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혹자는 빌바오의 구겐하임 미술관을 문화사업의 성공적인 사례로 얘기하고, 빌바오 같은 미술관 하나만 지으면 어느 도시라도 성공할 것이라고도 한다.

빌바오는 스페인의 대표적인 항구도시로서 교역과 중공업 및 물류의 중심지로 스페인의 가장 중요한 항구 중의 하나였고 금융 중심지였다. 그러나 1974년 경제공항, 1980년 항구기능의 폐쇄를 통해 퇴락해가는 도시가 되었다.

게다가 인접한 산 세바스치안(San Sebastian)이나 투우축제로 유명한 팜플로나(Pamplona)의 영향에 묻혀진 도시라고 할 수 있었다. 또한 도시의 외부적 이미지는 공업도시, 노동자도시와 같은 이미지가 우세했다.

이러한 외부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바꾸기 위한 새로운 노력으로 빌바오는 1986년부터 준비해온 도시 전체의 재건 사업을 통해 다양한 문화시설과 문화공동체 만들기에 노력해 왔다. 그리고 그 정점에 대표적인 시설(랜드마크)로 구겐하임 미술관이 자리잡을 수 있도록 함으로써 오늘날 문화도시 이미지로 탈바꿈하는 것을 가능하게 했다.

1990년대 스페인은 세비야의 만국박람회 개최, 바르셀로나의 올림픽 개최, 마드리드의 ‘유럽문화도시의 해’ 선정 등으로 빌바오와는 대조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여기에 바스크 정부는 철강산업과 항만산업의 쇠퇴로 몰락하는 산업사회의 전형적인 모습에서 탈산업화 과정을 겪으며 도시재건운동을 시작한다.

빌바오의 구겐하임 미술관 개관은 1991년 바스크 정부가 구겐하임 재단에 도시재건을 위한 계획을 포함한 제안서를 제출했고, 글로벌한 미술관과 문화재단의 장기적인 계획을 구상 중이던 구겐하임 측의 요구에 부합해 1997년 역사적인 개장을 했다.

1997년 빌바오의 구겐하임 미술관 개관 후 연간 100만명 이상의 관람객 중 외국인이 50% 정도 되었는데 빌바오에서 소비하는 액수는 1인당 140달러 정도에 불과했고, 대부분의 외부 관람객이 숙박은 빌바오 외의 지역에서 행해지고 있었다. 이러한 시점에서 구겐하임 미술관 건립에 반대하던 세력을 이끌던 조각가 오테이자(Jorge Oteiza) 등에 의해 구겐하임 미술관 건너편에 조성된 빌바오 미술관의 경우 연간 구겐하임보다 50% 이상의 입장표를 팔고 있으며, 컨벤션, 공연홀 및 복합 문화센터 등이 안정적이며 활발한 활동을 통해 지역문화발전에 동참하고 있다.

현대 도시의 문화발전을 위해서 ‘하나 된’ 강력한 문화보다 다양한 문화 생태계가 오히려 중요하다고 일반적으로 인식되고 있다.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은 바스크 정부와 빌바오시의 중장기적인 정책소산에 비하면 지나치게 표면화 돼 건축물의 상징적인 논란거리로 과소평가 되어진 면이 없지 않은 것도 사실이지만, 문화시설의 단독적인 위용을 나타내는 것보다 계획적인 문화 환경에 대한 접근과 이를 채울 콘텐츠와 예술가 및 시민에 대한 체계적인 지원이 함께 할 때 문화도시의 이미지를 지속할 수 있을 것이다.

스페인의 빌바오시가 속해 있는 바스크 정부가 몰락하는 도시의 회생을 위해 바스크 지방의 통합적이고 문화적인 도시마케팅을 위한 장기적인 전략수립에 관한 내용은 기회가 된다면 다음에 소개하고자 한다.

임치원 울산시립예술단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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