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종대 시인 울산중앙여고 교사
출근길은 언제나 바쁘다. 하늘은 흐리지만 며칠째 내린 비로 신록의 나뭇잎은 더욱 푸르고 땅도 촉촉이 젖었다. 오늘은 투표하는 날. 투표소가 가까워 오자 어김없이 가슴이 뛰었다. 언제부턴가 투표 날이 다가오면 항상 가슴이 떨렸다. 내가 지지하는 후보가 당선이 될까로 들떴고, 후보자의 득표율이 얼마나 될까로 설레었고, 낙선하면 그 후보는 또 얼마나 낙심할까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집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투표소에 도착했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투표를 하는 사람은 몇 명 되지 않았다. 젊은 사람은 별로 눈에 띄지 않고 대부분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이었다. 투표 용지를 받아 들고 기표소에 들어섰다.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후보자의 성명을 확인했다. 이 한 표가 내가 지지하는 후보에게 힘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하며 천천히 기표를 했다. 투표를 하는 내가 이렇게 마음 조이는데 결과를 기다리는 후보자들은 얼마나 초조할까 생각해 보았다.

나는 지난 30여 년 동안 숱하게 투표를 했다. 엄혹한 군사 정권 때는 말할 것도 없고 문민 정부 들어 치러졌던 수많은 선거에서 단 한 번도 빠지지 않고 투표를 했다. 작게는 지자체 선거의 구의원 선거에서부터 크게는 대통령 선거까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선거에서 투표를 했다. 선거 때마다 나에게 주어진 소중한 투표권을 행사했고, 한 번도 투표를 포기하거나 기권을 하지 않았다. 투표도 가능한 아침 일찍 서둘러 했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직접 아이들을 데리고 가서 민주주의의 꽃인 투표 현장을 구경시키면서 투표를 했다. 그 결과 어떤 후보자는 당선을 했고 어떤 후보자는 낙선했다.

그러나 내가 지지했던든 지지하지 않았든 간에 당선 후의 일부 후보자의 행태는 겉 다르고 속 다른 모습을 보여 실망스러웠다. 후보일 때는 간이라도 빼 줄 것처럼 공약을 남발하다가 당선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오불관언이다. 후보 때는 유권자들에게 허리가 구십도가 넘도록 정중하게 인사하던 사람들이 당선되면 갑자기 몸이 굳어 버렸는지 고개가 숙여지지 않는다. 후보 때는 그렇게 요란을 떨며 말잔치를 일삼다가 당선되는 순간 유권자도 지역 주민도 망각해 버린다.

출근 시간은 넉넉했지만 걸음을 재촉하여 반구동 로터리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렸다. 거리가 조용하다. 이제는 일부러 찾아와 인사하는 사람도 없고, 악수를 건네는 후보도 없다. 13일 동안 지겹게 들었던 확성기 유세 소리와 로고송 방송이 들리지 않아서일까 조용한 거리가 오히려 낯설게 느껴졌다. 그동안 후보자들의 확성기 유세 방송은 거리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유세 차량의 고성능 확성기 소리는 수업을 하고 있는 학교 교실에도 들렸다.

선거 기간에 학교에서 들었던 확성기 소리는 한두 번이 아니었다. 도심 골목 골목을 돌며 울려 퍼지는 확성기 소리는 학교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다. 오전과 오후 구분도 없었다. 학교와 주택을 가리지 않았다. 중간고사 시험을 앞둔 시점에서 학교 담장을 넘어 교실까지 무차별적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확성기 소음은 학생들의 짜증을 불러 일으켰고 심지어 일부 학생들은 “선생님, 저 후보 찍지 마세요!”라며 야유를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어쩌랴. 저렇게라도 해서 후보를 알리고 선거 운동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을. 나는 학생들의 짜증스러운 마음을 이해하면서도 그렇다고 함께 빈정거릴 수가 없어서 학생들을 달래는 몇 마디 말을 건넸다. 선거는 잔치와 같다. 마을에 잔치가 벌어지면 온 마을이 시끄럽듯이 민주주의의 꽃을 피우는 선거도 잔치와 같아서 온 동네가 시끄러울 수밖에 없다. 선거판이 벌어지면 후보자들은 동네방네 사람들에게 자신을 알려야 하고, 그러려면 때로는 저런 확성기라도 동원해서 유권자들에게 좀 더 큰 목소리로 한 표를 호소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학생들에게 설명했고 따라서 확성기 소리가 좀 시끄럽더라도 선거 기간 며칠만 참자고 설득했다.

하지만 나 역시 마음이 불편했다. 선거 유세를 하는 것도 좋지만 학교 부근에서는 확성기 소리를 낮추는 것이 미래의 유권자들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민의를 대변하기 위해 출마한 후보들과 선량을 찾아 뽑는 유권자들이 함께 모여 대화하고 토론하며 선의의 경쟁을 통해 민주의의의 꽃을 활짝 피우는 잔치가 선거라고 하지만 무엇보다 때와 장소를 가려서 선거 운동을 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다.

연례행사처럼 돌아오는 선거,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하는 이 잔치가 그냥 통과의례로 끝나지 않기를, 구경꾼 없는 저들만의 잔치로 끝나지 않기를 빌어본다.

이종대 시인 울산중앙여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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