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Memory, 망각의 도시에서 기억의 도시로

“또 다시 그 길을 만났어
한참을 걸어도 걸어도
익숙한 거리 추억투성이
미로 위의 내 산책

벗어나려 접어든 길에
기억이 없어서 좋지만
조금도 못 가 눈앞에 닿는
너의 손이 이끌었던 그때 그 자리...”

‘나는 가수다’라는 TV프로에 등장해 화제가 된 박정현의 곡 ‘미아’ 가사다. 가슴 아픈 이별을 경험해 본 누구에게도 있을 법한 상황을 담은 이 노래는 도시에 대한 두 사람의 공감각적인 추억을 다루고 있어 건축인으로서도 반갑다. 필자는 언어와 더불어 인간의 성장을 위한 중요한 재료는 바로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태어나 자라면서 하나하나 체득하는 몸짓과 행위와 동작의 장소들을 강화하는 공간경험의 총합이 자신의 세계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공간경험들은 점차로 행동반경이 넓어지면서 방과 집으로부터 도시의 각 장소로 확장된다. 도시에서의 삶이란 개인의 역사 속에서 도시 곳곳에 맺힌 자신의 삶의 자취와 기억을 품어내는 것이 아닐까….

도시에서의 삶이란 개인의 역사 속에서 도시 곳곳에
맺힌 자신의 삶의 자취와 기억을 품어내는 것이 아닐까…

▲ 로마의 로만포름(Roman forum). 지금의 폐허 사진 위에 복원상상도를 그린 투명필름을 겹쳐보는 기념품이 있다. 그것만으로 충분한 느낌이 들었다. 막대한 예산을 들여 폐허를 복원하는 것보다 장소가 주는 시간의 힘을 믿고 느끼며 상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더 창조적이고 세련된 도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신 그 예산을 현재의 생동감 있는 기억들을 위해 쓰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시간을 담고 있는 두 단어 ‘history(역사)’와 ‘memory(기억)’의 의미를 거칠게 비교해 보자면 전자는 보다 무겁고 강화된, 혹은 집단적으로 검증된 시간성을, 그리고 후자는 보다 일상적이고 개별적인 의미를 담고 있지 않나 싶다. 이와 관련하여 옛 것을 연구하는 학문을 고고학(考古學)이라 한다면 현대, 즉 우리 삶의 양식과 근간이 된 근대의 산물(modernity)을 연구하는 학문은 고현학(考現學-modernology)이다. 고고학적 관점으로 보면 도시는 주요 역사적 사료들의 보고(寶庫)가 되고 고현학적 관점으로 보면 도시는 현장감 넘치는 일상적 기억들의 연속체가 된다. 두 가지 모두 도시를 시간적인 차원에서 바라보는 유용한 시각틀을 제시해 주지만 오늘은 도시를 고현학적 관점으로, 즉 역사의 도시에서 기억의 도시로 전환하여 보기를 권한다.

▲ 병영성과 산전샘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도시에서는 드문 자연적 취락구조를 가지고 있는 울산 산전마을. 마을이 지닌 자연적, 문화적, 사회적 기억이 재조망되고 그 가치의 보존이 미래 부가가치를 높이는 에너지가 되기를 기대한다.

1990년대 후반, 거품경제와 도시개발의 분위기가 한창이라 ‘상전벽해(桑田碧海)’의 변화가 대도시의 미덕으로 여겨졌던 시절, 필자 인생 최초의 해외여행, 파리의 경험은 문화적 충격의 시작이었다. 세계적인 도시 파리의 도심은 생각보다, 그리고 울창한 가로수보다도 납작했고 단정했으며, 오래된 건축물과 새로운 건축물들이 사이좋게 도시공간을 공유하고 있었다. 새로운 공간들은 매우 세련된 방식으로 기존 질서에 통합되어 있었고 웬만한 건물들은 100년이 넘는 것들은 보통이었다. 이러한 환경에서 보행자들이 모든 것에서 우선하였다.

필자의 경험은 뉴욕 맨해튼으로 이어진다. 재미삼아 올라탄 애플투어의 코스는 센트럴파크 구겐하임 미술관, MOMA(현대미술관),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등 주요 도시 랜드마크들은 물론, 흑인문화의 상징이 된 할렘가와 아폴로 극장(올해로 75주년이 되지만 겉으로 보면 썩 아름답지는 않다), 영화 <프리티 우먼>의 배경이었던 소호 골목 등 오래된 건물 외관을 악착같이 남기는 사례들까지 보여준다. 우리보다 상대적으로 짧은 도시의 역사 때문인지 별걸 다 소중히 여긴다고 생각할 즈음, 대중문화의 상징인 뉴욕 맥도널드 1호점에 이르러 필자는…빵 터졌다! 역사적으로 검증된 코스와 건축물 위주로 다소 무거운 방식으로 답사해온 필자에게는 새롭고 유쾌하고 미국다운 투어의 경험이었다. 느릿거리며 도시를 걷는 재미를 필자는 뉴욕의 짧은 여행에서 들였다. 가을 맨허튼 거리를 채웠던 땅콩냄새, 프리즐 냄새는 지금도 그 장소를 기억하는 단서가 된다.

이러한 시점에서 울산의 원도심(성남동 일대)을 보자. 필자가 원도심이라는 장소를 좋아하는 이유는 오랜 유산으로서 읍성의 역사성이라는 다소 무거운 주제를 벗어나 수백년 전부터 지금까지 이 곳에 살아온, 걸어온, 즐겨온 사람들의 삶과 향기들로 강화된 에너지가 지금 나와 함께 하고 있다는 느낌, 그 꿈틀거리는 생동감이 좋아서다. 이러한 생명력은 대규모 정비나 복원의 프로그램을 타게 되면 사라져버린다. 오래된 문화재나 검증된 역사물이 아니면 사라져도 문제 될 것 없다는 관점이 우리 도시를 많이 망가뜨려 왔다. 지금의 흔적을 더 이상 훼손하지 않고 다정하게 도시의 시간성을 다루는 것이 중요하다. 수많은 사람들의 삶의 자취와 기억을 송두리째 지워버리는 대규모 재건축에 대해서는 이제 다른 생각을 가져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이와 함께 도심재생의 전략들이 점차로 개인의 경험과 일상적 기억을 소중히 여기는 쪽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것은 매우 반가운 일이다.

발터 벤야민 또한 “개인 기억의 축척이 도시의 역사를 만든다”고 하면서 “박물관이나 기념비적인 건축은 의미가 있지만 그 신화성을 통해 주류와 비주류,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하게 분류되는 방식을 통해 다른 억압구조를 만든다”고 비판한 바 있다. 그는 도시 자체를 발굴해야 할 수많은 개별 기억들의 총체로 보았고 그 자체의 의미들이 도시생명력을 위한 중요한 단서라고 여겼다.

울산도 이제 우리의 박물관을 가지게 되었다. 그렇지만 여기에 안위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이야기

▲ 유명희 울산대 건축대학 교수
들을 가지고 있는 울산이다. 지금도 많은 건물들이 사라져 기억 속으로 들어가는 도시에서 상대적으로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한 삶이 있을까? 울산 최초의 아파트, 울산 최초의 사택, 최초의 공장 등 울산 근현대의 도시기억이 가볍게 여겨지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과거 뿐 아닌 현재의 가능성들을 보다 소프트하게 관리하고 연결해서 사람들이 머물고 추억하고 돌아오고 싶은 매력적인 도시가 되기를 꿈꿔본다.

어린 시절 친구들과 뛰어놀았던 골목길과, 첫사랑의 설레임이 담긴 모퉁이를, 그리고 청년기의 왁자지껄함이 담겨있는 종로의 피맛골을 잃어버린 필자 인생 전반기에 도시는 ‘망각의 도시’가 되었지만 이후 삶에서는 추억이 도시의 일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아이들에게 어린시절의 추억이 층층이 쌓여가는 ‘기억의 도시’보다 좋은 선물과 축복이 어디 있을까.

유명희 울산대 건축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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