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장희 시인
어버이날과 스승의 날이 있는 5월에는 부모와 자식,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돌아보게 된다. 예전에는 비행을 저지른 자식에게 부모가 종아리를 쳐 응징하고 교육하는 관습과, 그와는 정 반대로 비행을 저지른 자식으로 하여금 아버지·할아버지의 종아리를 치게 하여 자식을 교육하는 관습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 비행에도 학교와 가정에서 모두 체벌을 금지하여 이와 같은 교육법은 찾아 볼 수 없는 전설이 되고 있다.

비행을 저지른 자식을 도장 속에 가두어 날이 어두워지기를 기다려 밤이 깊어지면 아이를 앞세워 조상의 무덤까지 끌고 간다. 그 후 아버지는 굵직한 회초리를 서너 개 꺾어 무덤에 놓고 큰절을 하며 “본관ㅇㅇ의 ㅇ씨 몇 대손 소자 불초하여 자식 하나 잘못 가르쳐 이런저런 짓을 저질러 조상에게 누를 끼쳤사오니 그 죄의 대가로 저의 종아리를 피가 튀도록 쳐주시옵소서”라고 고한 뒤 종아리를 걷고 상돌에 올라선 채 비행을 저지른 자식으로 하여금 꺾어온 회초리를 들려 사정없이 치도록 호령을 했다. 조상 앞에서 자식이 지은 죄를 아버지가 벌 받는 이 응징방법을 ‘조상매’라 한다. 어린 자식은 자신이 한 잘못이 이렇게 조상에까지 소급되는 연대죄악이라는 것을 통감하고 아버지의 종아리를 치지 않을 수 없음으로써 얻어지는 교육효과 또한 막중했으리라.

옛 우리 선조들의 교육수단은 회초리로 종아리를 때리는 ‘초달(楚撻)’은 필수였다. 서당에서 자기 아이가 오랫동안 초달을 맞지 않으면 오히려 스승을 찾아가 섭섭하다는 뜻을 전하는 것이 관례였다. 그리하여 과거에서 문장이 뛰어나면 칭찬하는 말로 서른 자루나 쉰 자루의 매가 꺾이도록 회초리를 맞고야 얻을 수 있는 ‘삼십절초(三十折楚)의 문장’이니 ‘오십절초의 대구(對句)’니 했던 것이다.

율곡 선생은 아이들이 삼가야 할 17조를 정하고 크게 어기면 한 번만 범해도 회초리를 들었다. 그 예로 부모가 시킨 일을 당장에 시행하지 않는 일, 형이나 어른에게 포악하게 말하는 일, 음식으로 다투고 사양하지 않는 일, 다른 아이를 업신여기는 일, 잘못을 숨기는 일 등이다. 그러나 가볍게 어기면 세 번 범할 때 회초리를 들었다.

나에게 전설의 회초리는 두 종류다. 어머니께서는 안방의 개탕 위에 하나가 부러질까봐 스페어(spare)로 항상 두 개의 회초리를 얹어 놓으셨다. 회초리를 맞았던 기억은 초등학교 시절 주로 언니와의 다툼이었다. 지금 생각하니 내가 제대로 몰라서 언니에게 우기며 떼를 쓰다가 결국 싸움을 한 것 같다. 또 다른 하나는 내가 어머니가 되어 아들을 키울 때였다. 한창 사춘기 시절 속을 태우기에 ‘조상매’ 흉내를 내었다.

진심으로 내가 부족해서 너를 잘못 가르쳐 이렇게 된 것 같으니 나를 때리라고 아들에게 회초리를 억지로 들려주었다. 결국 아들은 나를 때리지 못하고 잘못했다고 꿇어 앉아 둘이 서로 부둥켜안고 울었다. 그 후 아들과는 서로를 더욱 이해하고 돈독하며 사랑하게 되었다.

20세기까지만 해도 영국의 오래된 잡화상에서는 잘 만들어진 각종 회초리를 팔았다. 상류사회라고 할 수 있는 젠트리(gently) 계급에 속하는 집에는 아이들 방에 이 회초리가 걸려 있게 마련이었으며, 자녀교육 30조의 이행 여부로 젠트리 여부의 조건을 삼았다.

아버지는 자신이 하는 일에 긍지를 갖고 있음을 과시하라. 하루 잠시 동안만이라도 공부한다는 것을 보여라. 재산을 남기지 않는다는 것을 항상 말하라. 꾸짖을 때 장소를 가리지 말고 내 자식 남의 자식을 가리지 말라. 불구자를 조롱하면 현장에서 때려라. 큰 지구의를 사주라. 먼 곳에 심부름을 보내라. 자신의 노동으로 푼돈을 벌어 쓰도록 하라. 팀플레이의 스포츠를 시켜라.

가장 오랫 동안 체벌을 합법화해온 영국 하원도 1986년 공립학교에서의 체벌 폐지 법안을 통과시켰다. 우리나라에서는 얼마 전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의 체벌 전면 금지로 지금까지 논란이 일고 있다.

요즘은 남학생들이 여교사를 성희롱하는 장면이 동영상으로 떠돌고, 지난 연말에는 모 고등학교에서 남학생이 교실을 나가려는 여교사의 머리와 배에 주먹질과 발길질의 폭행을 했다. 학교에서나 가정에서의 체벌 금지로 이제는 학생이 스승에게, 자식이 부모에게 가하는 폭력이 걱정되는 세상이다. 따라서 전설의 회초리가 그리운 현실이 무척 안타깝다.

박장희 시인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