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Node, 삶과 기억이 맺히는 도시의 마디

길들이 만나는 ‘노드(결절점)’는 ‘통로’의 교점이고 ‘랜드마크’를 동반하기도 하며 ‘구역’이나 ‘가장자리’를 만들기도 하는 중요한 장소적 특성을 지닌다.

*node
① <생물> (나무줄기의) 마디.
② (뿌리·가지의) 옹이(혹).
③ (연결망의) 교점(접속점).
④ (인체 관절 부근의) 절(節).

활기찬 커뮤니티를 만드는 방법
① 모든 노드는 반드시 주변 커뮤니티의 주된 보행자 도로를 포함해야 한다.
② 액티비티를 집중시키기 위해서 노드의 크기는 상상보다 훨씬 더 작게 만들어야 한다. 예로 45*60피트(약14*18m)정도는 공공의 삶이 머물고 집중될 수 있는 크기이다.
③ 서로 다른 시간대에 서로 다른 사람들이 오가는 곳이므로, 보다 많은 사람들이 모이기 위해서는 노드 주변에 커뮤니티를 위한 용도를 배치하되, 하나의 용도가 아닌, 서로 상호작용이 되는 복합적인 용도들로 구성한다.
④ 이 노드들은 커뮤니티 사이에 분산 배치(300야드:약 270m간격)되어서 분주하고 조용한 삶의 대조가 작은 스케일에서 반복될 수 있도록 한다.

▲ 크리스토퍼 알렉산더는 유럽의 오래된 도시와 20세기 계획도시의 도시구조를 비교하면서 노드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우리는 도시를 어떻게 인식할까? 모든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도시를 그리는 나름의 ‘마음의 지도(심상지도:mental map)’가 있다고 한다. 같은 도시라도 주로 머문 장소나 개인적인 경험과 사건에 따라서 도시의 구조를 다르게 인식하기 때문에 모든 지도가 다 다르다. 그리고 마음의 지도가 잘 그려지는 도시가 있고 그렇지 않은 도시가 있다.

그런데 잘 정비된 도시라고 해서 반드시 좋은 지도가 그려지는 것도 아니다. 오늘의 탐험은 마음 속 지도의 출발점 혹은 거점이 되는 도시의 ‘노드(node:결절점-의미상 본문에서는 노드로 부르도록 한다)’에 대해 소개해 본다.

▲ 울산인들에게 인지도 높은 노드 중 하나인 ‘시계탑 사거리’, 쇼핑이나 데이트의 출발점이 되기도 하는 장소이다. 사람들이 머물 수 있는 보행자 친화적으로 보완되길 바라본다.
1960년대, 건축도시전문가 Kevin Lynch, Jane Jacobs, Christopher Alexander 등은 20세기초 획일적으로 계획된 도시에서 사라져간 도시의 삶과 개성을 되살리려는 다양한 이론과 실천을 펼쳤다.

그 중 케빈 린치(Kevin Lynch)는 명저 ‘도시 이미지(The Image of the City)’에서, 위에서 바라보는 도시가 아닌, 거주자와 여행자의 눈으로 읽고 인식하고 기억하는 도시를 ‘legibility(가독성)’의 관점으로 분석한다.

그는 이를 위해서 도시를 구성하는 다섯가지의 요소, 즉 paths(통로), edges(가장자리), districts(구역), nodes(결절점) 그리고 landmarks(랜드마크)’를 소개하고 있다.

도로나 산책로, 운하 등 사람들이 통과하는 동선인 ‘통로’, 도시환경 간 경계를 의미하는 ‘가장자

▲ 중국 상해 오각장(五角場). 5개 도로가 만나는 교차로 상부 고가도로를 독특한 구조물로 둘러 랜드마크를 만들고 지하레벨에 지하철 동선과 상점가 동선 교차부에 보행자 광장을 만들어 보행자에게 돌려줬다.
리’, 하나의 특성으로 묶여서 기억되는 도시의 ‘구역’, 그리고 도시의 대표적인 인식의 표상이 되는 ‘랜드마크’, 이 네 요소들도 다 중요하지만 오늘 ‘nodes’를 선택한 이유는 길들이 만나는 ‘노드(결절점)’는 ‘통로’의 교점이고 랜드마크를 동반하기도 하고 구역이나 가장자리의 성격을 만들기도 하는 중요한 장소적 특성을 지니기 때문이다.

‘네트워크의 마디’라는 의미를 가진 ‘노드’는 다양한 학문에서 중요한 개념으로 사용되는데, 도시에서의 ‘노드’는 크고 작은 길들이 만나는 교점을 말하며 크게는 교통의 중심인 로터리가 되기도 하고 장소적 특징을 가지므로 사람들이 모이는 큰 광장에서 작게는 쌈지공원, 더 작게는 길모퉁이에 놓여진 벤치가 되기도 한다.

다양한 크기로 배치되는 도시의 노드는 출발점과 도착점, 발산과 수렴의 양면성을 지니기 때문에 주변에 잘 인식할 수 있는 건물이나 환경들이 놓여지는 것이 보통이고 버스정류장이나 터미널 같은 교통수단의 교체장소가 되기도 한다.

▲ 움직임과 머뭄, 서로간의 인지가 가능한 적당한 크기의 공간, 기대앉을 수 있는 작은 조형물로 이루어진, 삶이 머물 수 있는 노드의 좋은 사례를 이태리 베니스 곳곳에서 발견한다.
울산의 경우 신복로터리는 다른 도시에서 울산에 들어왔다는 인식을 주는 노드이고 공업탑로터리는 울산의 도심에 이르렀다는 인식이 강한 도시차원의 대표적인 노드가 된다. 스케일을 줄여보면 필자가 떠올리는 보행자 차원에서의 대표적인 노드는 중구의 ‘시계탑 사거리’와 울산대 대학로의 ‘바보사거리’이다. 둘 다 모든 약속과 데이트의 출발점이 되는 인지도 높은 도시의 장소이다. 시계탑은 다방향에서 보이는 랜드마크로서 환형의 시계탑이 있지만 바보사거리는 특정한 주변환경장치가 없이도 명칭이 주는 인식의 거점이 된 신기한 예이다.

한편, 울산에는 버스노선이 주요 공공교통망이 되어 교통의 노드는 지상에 머물지만, 지하철이 있는 도시에서 지하철역은 지하와 지상을 연계한 입체화된 노드이며, 역주변의 주요 건물들과 연계되어 있는 등 도시의 중요한 노드가 된다. 때문에 지하철 노선도는 실제 지도와 다르지만 사람들은 도시의 각 지점들을 간략화된 지하철 노선도와 역을 기준으로 인식하게 된다.

노드의 관점에서 쇼핑몰들의 디자인 전략을 들여다 보면 더욱 흥미롭다. 예전처럼 큰 건물 안에 상점들을 집중시키는 방법에서 탈피해 크고 작은 노드들을 먼저 잘 읽히도록 배치하고, 그 주변으로 길과 상점들을 분포시키는 ‘작은 도시’의 개념으로 설계된 쇼핑몰들이 큰 매상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 창원 시티세븐의 주요 노드인 워터콘(water cone). 쇼핑몰에서 스카이콘(cone), 어스콘, 워터콘, 광장형식의 세 개의 노드를 다중심적으로 배치하고 모든 동선을 모이도록 하여 쇼핑객들이 길을 잃지 않고 머릿속에 지도를 그릴 수 있도록 한다.

도시디자인의 측면에서 도시의 주요 교통결절점, 도로부나 랜드마크, 큰 광장, 대표적인 건축물 등 큰 노드의 인지체계를 잘 정비하고 연계하는 것은 도시를 대내외적으로 인상적이게 만드는 중요한 전략이 된다.

그러나 현대 도시에서 그것과 함께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하는 것은 삶의 스케일에서의 노드들이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점은 보행자의 네트워크와 삶이 멈추고 출발하는 수많은 노드들이 활성화되고 건강해져야 도시의 수많은 장소들이 더 잘 기억되고 건강한 ‘마음의 지도’를 그리게 한다는 것이다.

▲ 유명희 울산대 건축대학 교수

글을 마치며 ‘엑티비티 노드’를 중심으로 한 크리스토퍼 알렉산더의 도시디자인 ‘레시피’를 소개한다. 그는 패턴 랭귀지 ‘pattern language’라는 책에서, 활기찬 커뮤니티를 만들고 도시의 삶을 풍성하게 하기 위한 요소로 ‘activity nodes(활기찬 노드)’를 소개하고 있다. 그로부터 40년 가까이 지났지만 도시와 거주자가 존재하는 한 그의 지혜는 아직도 유효하다.

유명희 울산대 건축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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