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종대 시인
산 좋고 물 좋은 시골이었다. 꼭 동화 속의 그림 같은 조그만 중학교였다.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처음으로 부임한 시골 중학교. 대학 다닐 때부터 야간학교 아이들을 가르치며 교사로서의 꿈을 키웠던 나는 신규 발령이 났을 때, 온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은 기분을 맛보았다. 때 묻지 않은 풋풋한 시골 아이들을 가르치는 즐거움과 보람으로 날이 새고 해가 바뀌는 것을 몰랐다.

수업도 즐거웠지만 수업이 없는 날은 더욱 신이 났다. 봄이면 앙증맞은 들꽃을 찾아 학생들과 함께 온 들판을 쏘다녔고, 여름이 오면 학교 앞으로 휘돌아 흐르는 강에서 쏘가리를 잡으며 퐁당퐁당 물장구를 쳤다. 가을에는 예쁜 낙엽을 주워 학생들의 책갈피에 하나씩 넣어 주었고, 겨울이 되면 교사와 학생 양편으로 나누어 운동장에 쌓인 눈을 모아 눈싸움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즐거운 학교 생활도 그리 오래 가지는 않았다. 2년 동안의 시골 중학교 근무를 마친 나는 도시의 인문계 고등학교로 발령이 난 것이다. 고등학교 생활은 중학교와는 달랐다. 모든 것이 낯설고 어설펐다. 무엇보다 학생들의 생활지도가 어려웠다.

오래 전 북구에 있는 고등학교에서 근무할 때의 일이다. 2학년 국어생활 수업 시간이었다. 내 딴엔 열심히 판서를 하며 설명을 하고 있는데 학생들이 갑자기 떠들며 웃기 시작했다. 판서를 멈추고 까닭을 물어 보았다. 그런데 모두 얄궂은 표정으로 계속 웃기만 할 뿐 말이 없었다. 반장에게 왜 그러냐고 물어 보았다. 반장마저 침묵을 지켰다. 분명히 무슨 일이 있긴 있는 모양인데 모두들 약속이나 한 듯이 말이 없었다. 그런데 가만히 아이들 표정을 살펴 보니 일부 학생들의 시선이 어느 한 방향으로 쏠려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시선은 엉뚱하게도 내 엉덩이 쪽에 머물러 있었다. 그제야 나는 학생들의 웃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닫고 허둥대며 급히 바지춤을 추슬렀다. 그것이 더 우스웠던지 아이들은 이번엔 더 크게 떠들었다. 바지가 엉덩이에 끼인 것이다. 순간 당황했지만 나도 그냥 아이들 따라 웃어버렸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얘들아, 엉덩이가 배가 고파 바지를 먹었구나~”

수업 중에 학생들이 갑자기 크게 웃거나 떠들 때가 있다. 남학생일 경우 더욱 그렇다. 알고 보면 별일이 아닌데도 학생들은 쉽게 그치질 않는다. 별일도 아닌 것에 웃고 떠드는 학생들이 이해가 되질 않아 처음엔 주의도 주고, 잔소리도 해 보고, 그것도 안 되면 화도 내어 보고 때로는 어르기도 해 본다. 그러나 돌아서면 그뿐, 아이들은 다시 사소한 일에 발을 구르고 소리를 지르고 난리를 피운다. 수업 중에 학생들이 갑자기 크게 웃거나 떠드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서 특히 요란한 경우는 대충 다음과 같다.

누가 친구의 별명을 불렀을 때, 누가 방귀를 크게 뀌었을 때, 누가 생뚱맞은 질문을 하거나 대답을 할 때, 누가 코까지 골며 자고 있을 때 등이다.

내가 젊은 교사이었을 때는 학생들이 이렇지는 않았다. 그땐 학생들이 그런 반응을 크게 보이질 않았다. 쓸 데 없는 일에 떠들거나 웃으면 용서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좋은 말로 듣지 않을 때는 꾸지람을 했고 그것도 통하지 않으면 교탁 앞으로 불러 내어 무릎을 꿇리는 등 기합을 주었다. 친구의 별명을 우스개 삼아 부르는 것이 얼마나 나쁜 일인지를 조목조목 따지듯이 설명하며 가르치고 훈계했다. 방귀를 뀌는 학생에겐 다음 시간부턴 나가서 뀌어라고 호통을 쳤다. 누가 생뚱맞은 질문을 하거나 대답을 하면 고등학생이 그렇게 철딱서니가 없어서 어디에 써 먹겠느냐고 면박을 주었다. 친구의 언행을 비웃거나 얕잡아 보면 너는 그럴 때가 없느냐고 되받아 창피와 무안을 주었다.

그 결과 나타나는 학생들의 반응은 대개 두 가지였다. 하나는 침묵이고 하나는 자는 것이었다. 침묵은 무관심이고 자는 것은 포기였다. 조용하지만 침묵만이 흐르는 교실. 교사가 질문을 해도 대답이 없는 교실. 일부 공부 잘하는 학생들 외에는 수업에 관심이 없는 교실에서 교사의 일방적인 수업이 무엇을 가져올지는 불을 보듯 뻔했다.

‘항구에 정박해 있는 배는 안전하다. 그러나 배는 항구에 묶어두려고 만든 것이 아니다’라는 말처럼 나는 언제부턴가 이런 일들이 생기면 그냥 학생들과 함께 즐긴다. 웃으면 같이 웃고 떠들면 나도 떠든다. 그래서 아이들이 저절로 그칠 때까지 기다린다. 물론 아이들에게 동화되는 것은 거리를 두고 나무라는 것 이상으로 힘이 든다. 그러나 그만큼 보람도 있다. 아이들을 무조건 가르치려 들면 교사도 학생도 피곤하다. 가르치기보다 어울리고, 나무라기보다 칭찬을 하면 아이들은 따라오게 되어 있다는 사실을 나는 부끄럽게도 이 나이에 비로소 깨닫고 있다.

이종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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